[충청매일] 청주동물원이 시민과 맑은 가을 아침 푸른 공기를 함께 나누고 있다. 20여 년간 베일에 쌓여있던 이른 아침 산책로를 지난 5일에 이어 오는 19일 무료 개방한다. 이른 시간이기에 동물에 대한 예의, 산새와 들풀에 대한 예의를 미리 이야기하려 한다.

동물원에 들어서면 영화 ‘동물, 원’에서 사육사를 애태우며 생명을 보전했던 초롱이가 태어난 물범 사(舍)를 만난다. 사랑스러운 초롱이는 광주 우치박물관의 좋은 시설을 맘껏 누리고 있지만, 물범 사(舍)에는 영화의 여운이 남아 있다. 귀엽던 초롱이를 기억해주길. 얼룩말 사(舍)를 지나 미어캣을 만나면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그 작은 아이들이 얼마나 야생동물 티를 내고 다니는지 모른다. 곰 사(舍)를 지나면서 그들이 웅담 채취용 불쌍한 곰이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너무 큰소리로 이야기하지 말아주면 좋겠다.

표범이 이른 아침 표범 하늘길에 올라 있는지 너무 밑에 가서 올려다보지 않으면 좋겠다. 가끔은 표범이 실례(?) 하는 것에 맞아 복권을 샀다 하는 사람도 있는데 맞았다 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주길.

스라소니는 참으로 귀엽다(울타리 안에 있으니 귀엽다고 하겠지만). 스라소니 새끼들 중 한 마리는 사람이 지나가면 오히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제법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또 한 마리는 등을 보이며 퍼져 자고 있다. 몇 번을 봐도 천하태평 언제나 자고 있다. 스라소니 사(舍) 앞에서 갈림길이 나와 망설여지지만 여기서는 결정 장애 티를 내지 말고 두 길 다 선택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린이 동물 사(舍)로 가면 어릴 적 삐삐가 올랐던 나무집이 있으니 잠시나마 어린아이를 흉내 내도 좋다. 심하게 기뻐하면 금방 눈에 띄니 주변을 한번 돌아보길. 조류장으로 가는 스라소니 숲속 길은 산속 오솔길처럼 아름답다. 유독 산새소리가 아름다운 데크길을 걸어 들어가면 아주 많이 다른 바람이 불어오는데 누군가는 느끼고, 누군가는 느끼지 못한다. 물새장이 내려다보이는 관망대는 그야말로 사색의 공간이다. 물새장 안에서 유유히 걷는 홍학을 보면서 작은 계곡에서 불어오는 북풍을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물새장 구름길을 걸을 땐 사막여우가 예민한 두 귀를 쫑긋하고 있으니 좀 더 살금살금.

이른 아침 산길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밤새 내려앉은 이슬로 촉촉해진 오솔길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걸어가길 바란다. 산새소리에 취해 비틀거릴 수도 있다. 늦잠꾸러기 호랑이 아침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발자국 소리를 가볍게 하는 에티켓도 갖추면 정말 좋겠다.

동트는 아침을 맞는 동물원 친구들을 만나며 이슬을 피해 가며 산길을 걷는 즐거움과 조심조심, 살금살금, 소곤소곤 걸어가는 기쁨을 느끼면 좋겠다.

이른 아침 동물원 산책 설명서를 꼭 숙지하고 오시기를. 10월 19일 아침 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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