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내 말을 한번 믿어보시오! 각자 가진 물건들은 난장에서 직접 팔아도 되고 우리 여각을 통해 매매를 해도 좋소. 그리고 여러 형씨들이 필요한 물건들도 얼마든지 마음대로 매입할 수 있소. 우리 여각에서는 장사꾼들의 물산은 좋은 금으로 매입하고 형씨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은 헐한 금으로 내놓을 것이오, 또한 한양의 진귀한 물건들도 경상들에게 직접 사서 이곳으로 가져오면 몇 배의 이문이 남을 것이오. 난장에서 재미를 보는 것은 형씨들의 수완에 달려 있소!”

봉화수가 다시 영남 장사꾼들을 회유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밑질 이유가 없겠소?”

“한몫 잡을는지, 발품만 팔는지는 가봐야 아는 거고……, 여기도 별 매기가 없어 공치는 날이 허다한데 헛일 하는 셈치고 난장에나 가볼까나.”

경상도 장사꾼들이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이번 난장을 트는 이유는 북진여각의 상권을 넓히기 위해서요. 그래, 우리 대행수께서는 절대로 폭리를 취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타관에서 오는 상인들에게도 물론이지만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도 덤으로 풀 물건을 벌써부터 준비해 놓고 있소! 이런데 난장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소? 형씨들이 북진에 온다면 절대로 손해를 볼 일은 없을 것이요. 북진으로 갈 의향이 있는 다른 상인들에게도 형씨들이 선전을 좀 해주시오. 그리고 의향이 있는 형씨들은 사흘 뒤 출발할 테니 식전까지 하늘재 밑 주막집으로 모이시오!”

봉화수가 흔들리고 있는 장사꾼들에게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는 삼월 스무나흗 날 아침 해뜨기 전까지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하늘재 밑 주막집으로 모일 것을 권했다.

그런 한편으로 봉화수 일행은 황강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하늘재와 새재 사이를 오가며 고개를 넘어가는 물산들을 철저하게 막았다. 때론 시세의 갑절이 넘는 값을 치르면서까지 선매와 도거리를 했다. 그리고는 모든 물산들을 하늘재 밑 주막집으로 옮겨 마당에 산적했다. 이제 매입해 놓은 물산과 영남 장사꾼들을 이끌고 하늘재를 넘어 왔던 길을 되돌아 북진으로만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미륵리에서 넘어와 봉화수가 머물고 있던 주막집에 도착한 보부상이 전한 전갈이었다. 봉화수는 자신의 짧은 생각을 자책했지만 이제와 돌이켜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봉화수는 황강 송만중의 패거리들보다 한 발 앞서가 먼저 물건을 선점해 놓고 그것을 북진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봉화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미륵리에서 넘어온 보부상의 말을 빌면 수일 째 영남 물산이 넘어오지 않자 황강에서는 난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낙동강을 타고 올라오던 짐배가 좌초되어 물산이 끊겼다는 둥, 아니면 문경에서 다른 지방으로 빠져나가는 영남 물산들을 단속하기 위해 새재 검색이 심해져 장사꾼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둥 온갖 추측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북진여각의 선매를 알지 못해 억측이 구구하지만 분명 머지않아 송만중이는 원인을 알아낼 것이었다. 평생을 장바닥만 밟으며 바꿈이 장사를 해온 여우 같은 송만중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염탐꾼을 보내 확실한 연유를 알아낼 것이 분명했다. 그 연유가 북진여각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충돌이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고 그렇게 되면 황강이나 목계보다 타격이 큰 곳은 이제 난장을 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북진 쪽이었다.

“오슬아, 지금 당장 미륵리 주막으로 넘어가 황강놈들 동태를 살펴보고 오너라!”

봉화수가 오슬이를 하늘재 너머 미륵리로 보냈다.

일단 미륵리 주막거리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아본 다음 방비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밖은 어둠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문경에서 미륵리까지는 왕복 십 마장이 족히 넘는 길이었다. 십 마장이면 대낮에 장정이 걸어도 꼬박 하룻길이었다. 그런데도 이 밤중에 더구나 험한 산길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사정이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황강으로 넘어가던 영남 물산들도 모조리 선매하여 당분간 황강 송만중의 수중으로 들어갈 물산들은 없었다. 영남 객주들과 상인들만 합세해 준다면 그들과 함께 짐꾼들을 구해 물산을 싣고 하늘재를 넘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송만중의 황강 패거리들이 하늘재 밑에서 북진으로 빠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면 그리로 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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