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690년, 당(唐)나라 무렵에 여성이 처음으로 황제에 올랐다. 바로 측천무후(則天武后)이다. 그녀는 당 태종 무렵에 후궁으로 입궁하여 4품인 재인(才人)이 되었다. 태종이 죽자 황실의 관습에 따라 그녀는 감업사로 출가하였다. 여승으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이전에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던 고종이 즉위하여 감업사를 찾았다. 고종이 그녀를 다시 입궁시켜 2품인 소의(昭儀)에 올렸다. 이후 그녀는 고종의 총애를 받아 4남 2녀를 낳았다. 나중에 왕 황후를 내쫓고 자신이 황후에 올랐다.

고종이 병으로 눕자 무후가 섭정을 하였다. 이때 고간대신들을 몰아내고 신진 세력을 등용해 권력을 장악하였다. 황태자 이충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장남 이홍을 황태자로 올렸다. 황태자 이홍이 죽자 셋째 이현이 중종에 올랐다. 그런데 중종의 황후인 위후가 친정 세력을 중심으로 정권을 장악하려하자 무후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중종은 제위 50여일 만에 쫓겨나고 넷째 이단을 예종에 세웠다.

그 해 서씨 형제가 황족들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무후가 40일 만에 평정하였다. 이어 태종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바로 진압되었다. 이에 무후는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종을 폐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황제에 올랐다. 나라 이름을 ‘대주(大周)’로 바꾸고 수도를 장안에서 낙양으로 천도하였다. 스스로 황제가 되어 15년 동안 통치하였다.

무후의 집권 시기는 공포 정치 시기였으나 운이 좋게도 전쟁이 없었다. 또한 관리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목이 떨어져 나가는 시기라 백성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 적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은 비교적 편안했다. 당 태종이 통치하던 ‘정관의 치’에 버금가는 시대로 평가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인 물은 오래두면 썩기 마련인 것이다. 무후의 총애를 받는 장씨 형제와 환관들이 횡포가 점점 극에 달하였다. 결국 무후는 앓아눕고 말았다. 이때 재상 장간지가 찾아와 아뢰었다.

“지금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은 모두 당나라 황실인 이씨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무후께서는 언제까지고 황제의 자리에 있고자 하시겠지만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기 마련입니다. 그릇도 가득차면 넘치는 것이 그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만 자리를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무후는 어쩔 수 없이 태상황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전에 쫓겨난 중종이 다시 황제에 올랐다. 무후는 임종 무렵에 유언을 남겼다.

“내 묘비에는 단 한 글자도 새기지 말라!”

그녀의 묘비는 그래서 무자비였다. 이는 ‘당서(唐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모든 만물은 시간에 따라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이고 지나치면 화를 입는다는 경구이다. 이 땅에 토착왜구와 비리 검찰과 그들에 기생하는 세력들도 이제는 사라질 때가 됐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두 어서 봄바람이 불기만을 고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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