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왜그리 놀라시우?”

“혹시 그 조카가 근수라는 심마니 아니오?”

“아니! 우리 장조카 근수를 어떻게 아시우?”

장사가 되지 않아 당나귀 여물값도 못했다는 사내가 봉화수보다도 더 놀라 되물었다.

“근수는 우리 여각과 거래하는 약초꾼이오!” 

근수는 금수산 백운동 계곡에 사는 심마니였다. 몇 년 전 어댕이골에서 천년 묵은 산삼 천종 세 뿌리를 캐 청풍도가에 맡겼다가 떼어먹혔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지금은 북진여각과 거래하며 금수산에서 나는 진귀한 약재를 대주고 있었다. 당나귀 여물값도 못 벌었다는 영남 상인이 천상리에 사는 심마니 근수의 중부라니, 봉화수는 자신의 중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장형이 동로 고향집을 떠나며 자신은 이제 죽으러 가니 부모님 제사는 동생이 좀 지내라며 내게 맡기고 갔었는데, 삼 년 전 근수가 우리 집에 와 이제는 아버지께서 쾌차하셔서 다시 제사를 모신다고 하니 가져가겠다며 왔었다오. 그 이후 이래 돌아다니며 먹고 사느라 선친 기일에도 못가보고, 형제간에 얼굴도 한번 못보고 삽니다.”

사내의 눈가가 불그죽죽해졌다.

“문딩아! 그러다 곡하겠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거지, 청승 떨지 말거라. 그래 형씨는 문경에 왜 왔는겨?”

“실은 이번에 우리 북진에서 대대적으로 상전을 짓고 그것도 알릴 겸 난장을 튼다오. 그래 영남 물산도 구하고 영남 객주들과 보부상들에게 난장 소식도 알려고 하늘재를 넘어왔소.”

봉화수는 황강 송만중의 이야기는 빼버렸다. 혹시 영남 장사꾼들 중에는 전부터 송 객주와 거래를 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절에 난장이 틀어질라나?”

“이번에 우리 북진여각에서는 겨우내 갈무리해둔 물산들을 모조리 풀거요. 또 한양에서 경강선을 몰고 내려온 경강상인들이 온갖 물산들을 풀 준비들을 하고 있다오. 이제 영남 상인들만 올라와 준다면 난장을 트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소!”

“당신 얘기를 들으면 우린 구색을 갖추기 위한 들러리 같은데…….”

“그렇지 않소. 우리가 트는 난장에는 팔도의 온갖 물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일 것이오. 그러다 보면 천지사방에서 장사꾼들이 모여들 것이고, 어떤 물건이든 임자가 나타나 연대가 맞으면 서로 좋은 가격에 매매가 이뤄질 것이 아니겠소?”

아직 갖춰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나 봉화수는 마치 모든 준비가 끝난 것처럼 영남 장사꾼들에게 허풍을 쳤다.

“텃세가 있을 것 아니오?”

“무슨?”

“타관 사람들이 내 집 장마당까지 들어와 장사를 하는 데 텃세가 없겠소?”

“우리 북진여각에서 험표를 발행할 거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오. 험표를 받으려면 장세를 내야할 것이 아니오? 괜히 넘어갔다가 물건도 못 팔고 장세만 뜯긴다면 뭐 하러 등골 빼고 거기까지 간단 말이오?”

“그러게 말여! 차라리 앉은자리에서 장독이나 깨지 뭣 하러 생고생을 한다냐.”

영남 장사꾼들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사가 별거겠소? 사람이 구름떼처럼 모이면 당연히 매기가 생기고, 서로서로 필요한 물산을 거래하다 보면 밑질 게 뭐 있겠소. 더구나 경상들은 물론 타지 상인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이니 형씨들께서도 한자리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하게 될 터이니 발품도 줄어들 것이 아니오?”

봉화수가 다시 영남 장사꾼들을 설득했다.

“형씨 얘기만 믿고 거기까지 가기에는 너무 무리요!”

영남 장사꾼들이들이 그냥 자기들 상권에서 향시나 돌겠다는 쪽으로 생각들을 굳히고 있었다. 봉화수는 다급해졌다. 어떻게든 난장이 다양해지려면 영남 물산이 송만중에게로 흘러들어가는 것도 막아야 했지만 영남 장사꾼들도 북진으로 가게 만들어야 했다.

“형씨들,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특별히 영남에서 오는 형씨들에게는 장세를 면제해준다는 험표를 발행해 주면 어떻겠소?”

봉화수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형씨가 그럴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오?”

“그럴만한 힘도 없으면서 내가 당신들을 북진으로 오라고 하겠소?”

“그래도 왠지 찜찜해서…….”

봉화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지만 영남 장사꾼들은 못내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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