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⑤ 봉화수, 영남객주들을 이끌고 북진에 당도하다

하늘재를 넘은 봉화수 일행은 문경에 도착하자마자 영남 물산들을 선매하며 황강이나 목계로 가는 물산들을 원천 봉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주, 예천, 가은, 점촌, 함창의 향시를 돌며 대추·곶감·명주·약초·한지 같은 특산품들을 닥치는 대로 도거리 했다. 특히 이 지역의 특산품 중 조선팔도 제일로 치는 명주와 곶감은 단 한 필도, 단 한 접도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철저하게 사서 모았다. 동시에 봉화수는 영남 객주들과 보부상들의 발길을 북진으로 돌리기 위해 문경 주막집들을 돌며 장사꾼들의 동태를 살폈다.

“요새 아랫녘은 어떻소?”

봉화수가 영남 장사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찾아다니며 경상도 지역의 형편을 물었다.

“사람 목숨 살리는 건 하늘 몫인데 얼마나 많은 목숨을 거둬가려고 저러는지…….”

“하늘도 지랄이여! 가물어도 어지간해야지. 봄보리 다 타죽고,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보릿고개를 넘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모진 목숨들이 죽어야 할지…….”

“지난 파수 땐 가은으로 솔면으로 화북으로 중뿔나게 돌아쳤지만 나귀 여물 값도 못했다 안 하나.”

“그런 오지로는 더 하겠지. 먹는 게 없는 데 장까지 걸어 나올 힘이 있겠는가?”

“자넨, 문경 인근을 돌았지? 그쪽은 어떻드나?”

문경 인근 장을 같이 보러 다니는 패거리인 듯 나귀 여물값도 못했다는 사내가 다른 사내에게 물었다.

“여기나 거기나 매 한가지라. 그래도 문경같은 큰 고을은 인총도 많고 하니 그런대로 장은 열리고 있는기라. 물산은 그런대로 흘러 다니는 데 매기가 거의 없으니 그게 큰 문제 아이가?”

“웬만한 장은 살 사람보다 장사꾼이 더 많으니 뭔 매기가 있겄나?”

“몇 년 새 장사꾼도 많이 늘어나기는 했지.”

“농사 지어봐야 이것저것 다 빼앗기고 나면 식구들 입도 끄슬리지 못하니 등짐 질 힘 있는 젊은놈이 농사를 짓겠는가? 그러니 장바닥에 맨 장사꾼이지.”

모두들 죽는 소리를 해댔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영남에는 물산들이 장마당에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또 그 물산들이 매매가 되기보다는 매기가 없어 장사꾼들 수중에 쟁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봉화수는 이들 영남 장사꾼들을 회유하면 어렵지 않게 영남 물산과 장사꾼들을 북진으로 오게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 때는 나라에서 곳간을 풀어 백성들을 구하든지, 골골이 부자들이 곳간을 열어 고을민을 살려야 하는 데 쇳대를 잔뜩 틀어지고 내놓지를 않으니 없는 놈은 굶어죽는 수밖에 없구먼.”

“내놓으면 뭘 하나. 고리로 내놔 정작 배곯는 백성은 엄두도 못내는디…….”

“자기들이야 등 따습고 배부르니 백성이 굶어죽고 장사꾼들 물산이 안 팔린들 뭔 걱정이겠소? 곳간 쇳대만 움켜쥐고 있으면 굶다굶다 기어 나온 백성들이 자식이라도 팔어 곡식과 바꿔먹을 것 아니오?”

봉화수가 영남 장사꾼들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근디 형씨는 뉘요?”

“그러게! 말씨를 보니 여기 사람 같진 않고?”

“삼년상 끝나고 누가 죽었냐고 묻는다더니 그 꼴이구먼. 이제껏 이바구 하다 뭔 통성명이여. 오다가다 길에서 만난 인생들 그냥 그렇게 흘러가면 되지.”

“아니올시다. 제가 불청객이니 신고를 하리다. 나는 충청도 청풍에서 온 있는 봉화수라는 장사꾼올시다.”

봉화수가 좌중에서 일어나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

“아니! 그 뭔 데서 예까지 뭐 하러 왔는겨?”

당나귀 여물값 사내가 말했다.

“청풍을 아시는가요?”

“알다마다! 우리 형님이 거기 천상리에 산다 안합니꺼.”

천상리라면 금수산 상봉 아래 마을로 북진에서도 산길로 사오마장은 들어가야 하는 심심산골이었다.

“거긴 어째?”

“형님께서 십수 년 전 발병을 했는 데 백약이 무효라, 마지막으로 누가 거기 가서 피병을 해보라고 해서 들어갔다오. 그런데 이젠 건강해져 잘 살고 있다고 삼 년 전 선친 기일에 다녀간 조카가 그러더구만요.”

“예에?”

봉화수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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