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리고 장보는 재미는 눈요기도 큰 몫을 했다. 아무리 사는 것이 팍팍해도 장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넘쳐나야만 사람들도 신명이 날 터였다. 그러다보면 이것저것 욕심을 내며 물건을 만지게 되고 결국은 구매로 이어질 것이었다. 최 행수가 경상들을 만나기 위해 목계에 내려온 것은 그들이 이 두 가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 행수! 지금 목계에는 미곡상뿐만 아니라 온갖 상인들이 다 올라와 있소. 내 그들을 수소문해서 북진으로 올라갈 테니 아까 그 물산들을 내가 도거리를 하게 해주시오!”
이제는 홍만경이가 몸이 달아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홍 선주가 가지고 있는 쌀은 대곡 삼백 섬이라 해도 천이백 냥 밖에 더 되오? 더구나 지금 목계에선 미곡이 몰려 값이 떨어지고 있는데 그것으론 무명 열 동만 하면 딱 맞겠소!”
처음부터 홍만경이 최풍원을 시골 장사치로 얕본 것이 실수였다. 홍 선주는 최 행수가 가지고 있는 물산들이 소규모일 거란 단정 하에 흥정을 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상황은 정반대였다. 최 행수가 밝힌 물목만 해도 웬만한 경강상인들의 전 재산보다 많았다. 더구나 최 행수가 말한 물목은 일부에 불과했다. 유 선주가 조금 전에 본 바로는 수천이가 읽던 물목 단자만 해도 책이 한 권이었다. 그러니 그 안에 들어있는 물산을 가지마다 늘어놓는다면 생각만 해도 엄청난 물산이 북진여각의 창고에 쟁여 있을 것이었다. 최풍원의 물량이라면 한양의 거상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었다.
“최 행수! 이번 단오에 대궐에서 큰 잔치가 있소. 아까 말한 물목은 거기에 공납할 물품이오. 피륙은 빼고 누룩, 산채, 청, 기름만 내게 넘겨주시오. 모자라는 돈은 내 한양에 기별을 해서 바로 해결해 드리리다. 부탁하오, 최 행수!”
홍만경이가 최풍원에게 매달렸다.
홍만경이 미곡을 싣고 목계로 올라 온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홍 선주는 공납을 대가로 받은 대동미를 한양보다 시세가 높은 목계로 옮겨 차액을 노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에 큰 연회가 있어 대동미가 과다하게 풀려나자 한양은 쌀값이 곤두박질을 쳤다. 쌀값이 폭락을 하자 상대적으로 특산물 값은 등천을 했다. 이래저래 수지를 맞출 수 없었던 홍 선주는 남한강 상류 지역에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거듭되어 곡물이 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때맞춰 가흥창에서 용산창으로 입고할 세곡 운송까지 수주를 받았다. 홍 선주로서는 이만저만한 호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홍 선주가 목계에 닻을 내렸을 때는 목계의 쌀값은 한양보다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너도나도 싣고 온 쌀이 장바닥마다 넘쳐나는 데도 매기는 없었다. 한양 생각만 하고 덮어놓고 쌀만 싣고 온 것이 불찰이었다. 한양 생활에 비하면 구차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에서 비싼 쌀보다는 한 끼라도 더 때울 수 있는 잡곡이 절실했다. 그러니 매기가 없고, 매기가 없자 장사꾼들은 자꾸만 값을 내렸고 한양보다도 쌀값은 더 폭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쌀을 팔아도 이득은 고사하고 원금에서도 손해였다. 홍 선주는 대동미를 팔아 이득을 남기고, 그 돈으로 한양보다는 값싼 특산품을 산지에서 구입하고, 내려가는 길에는 세곡까지 싣고 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꿩 먹고, 알 먹고’ 식의 홍 선주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이런 차에 호조건을 제시하며 다가온 최풍원이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구세주였던 것이었다. 더구나 유 선주가 원하는 모든 물목을 최 행수는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홍 선주로서는 최 행수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홍 선주, 얘기는 끝났소! 그만 흥정을 끝냅시다!”
“흥정을 끝내다니요?”
홍만경이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더 할 얘기가 뭐 있겠소? 내 물건 주고 남 물건 받으면 장사 끝난 것 아니겠소?”
“…….”
홍만경이가 최풍원의 의중을 읽지 못해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시오? 홍 선주 물건을 북진으로 가져오면 내 물건 내주고 거기 물건 받으면 되는 것 아니겠소? 단, 홍 선주 반드시 다른 경상들과 함께 난장을 틀기 전날까지 북진나루에 와 짐을 풀어야 하오!”
최풍원의 말 속에 흥정이 성사되었음을 뜻하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야 홍만경 얼굴에 안도하는 빛이 보였다.
“걱정하지 마오! 그런 조건이라면 목계에 머물고 있는 경상들은 물론 사흘 뒤 또 올라오기로 약조한 모든 경상들을 몰고 내 쾌히 북진으로 올라가리다.”
홍만경이가 들뜬 목소리로 약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