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참고로 무과의 활쏘기 과목을 살펴보면, 조선 초기(경국대전)에는 목전 철전 편전 기사 기창 격구 6기가 주를 이루다가, 조선후기(속대전)로 오면 목전 철전 편전 유엽전 기추 조총 편추로 바뀝니다. 여기에 이론 과목인 강서가 기본이죠. 전기와 후기가 대체로 비슷한데 오히려 활쏘기는 유엽전이 더 추가된 형국입니다.

우리나라의 향촌사회는 혈연과 학연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그런 자취가 지금껏 남아서 요즘도 누가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같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거나 고위관료로 승진하면 지역마다 대번에 현수막이 나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역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는 지역 단위로 그런 인재를 기르기 위한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를 겪은 지금도 이러한데, 조선시대는 어떠했을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명실 공히 과거제도로 인재를 등용한 나라입니다. 과거는 모두 세 가지입니다. 문과 무과 잡과. 잡과는 기술직이니 하위관료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고위관료로 가는 길은 문과와 무과 둘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조선 중기로 접어들면 문과 경쟁이 너무 심하여 무과로 방향을 트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군사가 많이 필요해지자 문과보다 무과를 훨씬 더 많이 뽑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한 번에 만 명도 더 뽑은 적이 있어서 무과가 아니라 ‘만과(萬科)’라는 비아냥거림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를 준비하려면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부유한 양반집에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죠. 그렇지만 평범하거나 가난한 집안에서는 한 가장이 학업에 전념하는 것은, 다른 가족의 참혹한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더욱이 무과의 경우 활쏘기가 시험의 주종을 이루는데, 무과를 치르려는 사람들(거자)은 활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각궁 값은 매우 비쌉니다. 열대지방에서 나는 무소뿔이 재료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을 지역사회에서 해결해주려고 사람들이 장학회를 만듭니다. 이런 장학회를 ‘계’라고 했습니다. 활쏘기를 위한 계이기 때문에 사계(射契)라고 했죠. 이 계의 우두머리는 지역의 유력 인사가 맡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계장(또는 사장)은 대단한 위력을 지닌 존재가 됩니다. 이들의 지원에 힘입어 거자들은 무과 훈련에 전념하게 됩니다. 거자는 둘로 나뉩니다. 문과 준비생은 유학이라고 하고, 무과 준비생을 한량이라고 합니다.(‘한국의 활쏘기’)

이렇게 지역별로 사계가 구성되고 이들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무과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갑오년에 무과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각 지역에서 한량을 지원하던 사계는 어떻게 될까요? 장학회의 목적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 충격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활쏘기의 미래가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목적이 사라진 단체가 큰 비용을 감당하면서 존재할 수 없죠. 대부분 활터들은 공중 분해되고 맙니다. 이 때의 위기를 ‘조선의 궁술’에서는 ‘마치 비로 쓸어버린 듯이’라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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