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악의 근원으로 묘사되는 ‘이브’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 형성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악의 근원으로 묘사되는 ‘이브’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 형성
  • 충청매일
  • 승인 2019.10.06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4장 악녀: 남성을 힘들게 하는 나쁜 여자들
(1) 최초로 남성을 곤경에 빠뜨린 여성, 이브
12세기 노트르담 뒤 포르교회 기둥머리에 조각된 아담과 이브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극적인 장면 밀도 높고 인상깊게 묘사
프란츠 폰 스툭 작품에선 이브와 뱀이 한몸인 것처럼 그려져
선악과 따먹고 아담에게도 권한 ‘이브’ 모든 죄의 근원 지목
인류의 어머니인 동시에 남자를 망친 최초의 여성으로 그려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노트르담 뒤 포르 교회, 클레르몽 페랑 소재, 12세기(왼쪽). 프란츠 폰 스툭 ‘아담과 이브’, 1893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노트르담 뒤 포르 교회, 클레르몽 페랑 소재, 12세기(왼쪽). 프란츠 폰 스툭 ‘아담과 이브’, 1893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팜므 파탈(Femme Fatale)은 남성을 유혹하여 파멸시켜 버리는 치명적인 여성을 뜻한다. 팜므 파탈 유형의 나쁜 여자 이미지는 19세기 미술사에 매우 번성해 역사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본래의 맥락과는 다르게 각색되어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하였다. 하지만 이런 악녀 이미지의 원조는 중세부터 본격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아담과 이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브의 모습일 것이다.

고대와 르네상스 사이, 기독교가 세계관을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중세에는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미술의 역할이었다. 원죄를 가진 인간으로서 겸손하고 금욕적인 생활이 장려됐던 만큼 여성이건 남성이건 누드로 묘사되는 인물은 대폭 줄어들었고, 누드로 인간이 표현되는 것은 신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수한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었다. 예컨대 선악과를 먹기 전 부끄러움을 몰라 옷을 입지 않았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말이다.

구약의 창세기에 따르면 기독교의 하느님은 아담을 먼저 만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아 그것으로 이브를 만들었다. 생명이 가득한 에덴동산에 거주하면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아담과 이브에게는 한 가지 금기가 있었는데, 선악과를 따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교한 뱀의 꼬임에 빠져 이브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권하여 받아먹게 되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지면서 알몸이 부끄럽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느님은 어째서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는가 꾸짖으며 이 일의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담은 이브가 열매를 따주어서 먹었을 따름이라고 대답하였고, 이브는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다고 대답했다. 하느님은 그에 대한 벌로 뱀에게는 다리를 없애 평생 기어 다니는 고통을, 이브에게는 아기를 낳는 고통을, 아담에게는 평생 죽도록 노동하는 고통을 내렸다. 현세를 살아가는 여성이 아기를 낳는 고통을 겪고, 남성은 일을 하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 그것은 태초 아담과 이브의 원죄 때문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사실상 여전히 아기를 낳는 고통은 여성의 것이지만, 죽도록 일하는 고통은 분담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창세기에 쓰여 있는 텍스트 자체는 이러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시대의 분위기 따라 이야기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아담에 대해서는 그다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없지만, 이브에 대해서는 인류의 어머니로서 그려지는 측면과 남자를 꼬드겨 나쁜 길로 인도했다는 측면이 대조를 이루며 후자가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12세기의 남성 수도원에는 금욕의 중요성을 수도사들에게 일깨우기 위한 방편으로 일종의 여성혐오 정서와 결합하여 이브의 죄가 아담을 망친 것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에 묘사된 이브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여성은 가까이해서는 안 될 존재이며 악의 근원이거나 악에 더 가까운 존재라는 교훈을 되새기게 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12세기의 노트르담 뒤 포르 교회의 건축물 기둥머리에 조각된 아담과 이브를 보자. 기둥머리라는 좁은 공간의 한계 속에서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극적인 장면이 대단히 밀도 높고 인상 깊게 묘사되고 있다. 오른쪽 위 날개를 달고 옷을 입은 인물은 이들을 쫓아내고 있는 대천사이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는 아담은 오른쪽에 선 인물이고 무릎을 꿇은 듯이 앉아있는 인물이 이브이다. 12세기 조각의 특성상 인체의 묘사는 그다지 사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담의 갈빗대는 몇 개의 선으로 간단하게 표시되어 있고, 팔꿈치나 무릎 같은 관절의 섬세한 표현은 생략되어 있다. 이브 역시 어깨와 다리 등이 뭉툭한 덩어리로만 표현되어 있고 신체의 비례나 세부에 대한 묘사는 보이지 않는다. 신체의 세부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이 조각이 전하는 메시지는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쫓겨나는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뭇잎으로 신체의 중요 부위들을 가리기에 바쁘다. 뒤쪽의 대천사는 한 손으로 아담의 수염을 잡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단죄와 처벌을 뜻하는 행동이다. 이들 가운데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아담의 행동이다.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아담은 앉아있는 이브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한쪽 발로 이브의 다리를 밟고 있다. 대천사에게 추방당하는 과정에서 아담이 이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끌고 가는 것 같은 모습으로 조각된 것이다.

분명 아담은 화가 난 것 같다. 자신에게 선악과를 권하여 이러한 시련을 초래한 이브에게 말이다. 하지만 뱀이 이브에게, 이브가 아담에게 권유한 죄의 연쇄과정에서 선후의 과정은 있을지언정 어쩌면 그것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는 행동을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것일까 말이다. 누가 더 잘못인가를 신학적 논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장면에서 창세기를 해석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세기의 교부 성 베르나르는 제자들에게 한 설교에서 “이브는 모든 악의 근원이며, 그녀의 더러운 죄는 후세의 모든 여성들에게 인계되었다”라고 말했고, 이러한 여성관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이러한 당시의 인식이 조각의 구도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리아 숭배가 절정에 다다른 13세기에 이르면 이브와 마리아는 타락과 순결, 부덕과 미덕, 천박함과 고상함의 대극을 형성하는데, 이는 여성을 악하거나 선한 극단의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다양한 개성을 가졌을 현실의 여성들에게 의식의 굴레로 작용되었다.

첫머리에 밝혔지만 19세기에 이르면 종교와 신화, 역사 속의 많은 여성들이 천하의 악녀로 포장되어 그려지기 바빴는데, 이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역시 이브였다. 19세기의 팜므 파탈의 대잔치에 원조가 빠질 수 없는 일이었다.

독일 화가 프란츠 폰 스툭(Franz von Stuck)의 ‘아담과 이브’에서 이브와 뱀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징그러운 뱀이 이브의 한쪽 다리를 휘감고 있고, 입에 선악과를 물고 있는 상태에서 이브는 뱀의 머리를 아담에게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뱀으로부터 유혹받아 자신이 먼저 먹고 다음에 아담에게 권했다는 성경 속 전후좌후의 상황은 무시되고, 뱀과 이브가 공모하여 아담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담은 주춤주춤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있으며, 이 제안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두운 얼굴로 망설이고 있다. 반면 이브는 희고 아름다운 몸을 드러내며 자신 있다는 듯이 골반에 한 손을 대고 야비한 웃음을 흘리며 아담에게 선악과를 받기를 강요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어느 구석에도 이브가 뱀이 ‘함께’ 아담을 유혹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프란츠 폰 스툭이 그려낸 아담과 이브는 죄의 근원을 분명히 이브에게 두고 있다.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당하고 있는 아담의 고뇌와 우울함, 그리고 의심 없이 죄와 일체가 된 이브의 치명적 유혹이 그림 속에서 명확하게 대조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이브는 인류의 어머니이지만, 동시에 남자를 망친 최초의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죄를 지어 낙원에서 세상으로 인류의 조상들에게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는 일인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그것이 바로 여성을 바라보는 역사적인 관점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 바로 그 지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