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도대체 조국이라는 태풍이 사그라질 줄 모르고 있다. 시간당 120㎜의 비를 쏟아 부은 진짜 태풍이 왔어도 여전히 조국태풍은 건재하다. 보통 시간당 10㎜ 이상의 비가 내리면 ‘비 많이 온다’라고 느끼는 정도이고, 30㎜/h 이상이면 집중호우라고 한다. 2017년 중부지방에 큰 피해를 입힌 호우가 92㎜/h 였으니 이번 강릉의 120㎜/h는 엄청난 기록이다.

또 하나,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사건은 영화 ‘살인의 추억’의 범인 이춘재가 교도소 안에서 검거되었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은 개봉당시 숱한 화제를 일으켰다. 정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일까?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박현규(박해일 역)가 진짜 범인 아닐까? 형사(송강호 역)가 내 뱉은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등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었다. 많은 희생자를 낸 강력사건의 범인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조국태풍에 가려져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스스로 자백한 성범죄가 30건, 살인한 피해자 수 15명에 이르는 엽기적인 범인은, 그런데 상상했던 것처럼 무섭고 우락부락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얌전하고 다소 연약한 외모를 지녔다. 어머니에게는 착한 아들이었고, 교도소에서는 1급 모범수로 가석방도 기대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나 교도소 동료들에게는 연쇄살인범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떤 전문가는 그가 굉장히 머리가 좋고, 상황에 따라 처신을 아주 잘 하는 고도의 지능범일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자신의 악한 본성을 숨기는 것은, 어떤 짧은 기간은 가능할 수 있으나 25년이라는 긴 세월은 불가능에 가깝다. 범죄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낸 모습이라기보다는 그의 본성 중의 일부일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다 존재한다. 어떤 것이 본 모습이냐를 두고 성선설과 성악설이 존재하지만, 무엇이 옳은지는 모른다. 필자는 성선설을 믿는다. 우리는 본디 착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 특히 양육자(대부분 부모)에게 여러 가지 상처를 받으면서 본래의 성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스위스의 저명한 의사이자 작가인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그의 저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에서 “현재의 겉모습은 어린 시절의 상처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속적인 사건이 누적된 결과이다”라고 말한다. 지금의 우리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로 인해 변질되고, 그 변질된 모습으로 관계 맺는 과정에서 인식된 비본질적 모습인 것이다. 맹자(孟子)의 성선설과 유사하다.

범인 이춘재도 본성은 선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그가 성장하면서 받은 많은 상처들을 건전한 방식으로 해소하지 못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성장과정은 이춘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있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건이 있었다. 이때 받은 상처로 젊은 시절까지는 착한아이로 자라다가, 결혼 후 가정을 꾸린 후에 이 상처로 인한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결혼 10년차에 아내와 겪는 여러 가지 갈등이 어린 시절 필자의 상처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이러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서 본래의 선한마음으로 돌려주는 작업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엇보다 필요하다. 두 달여 진행되는 조국장관에 대한 관심만큼 ‘우리들의 상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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