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건 싫소!”

홍만경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홍 객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배는 집안의 곳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재물을 쌓아둔 곳간을 처음 대면하는 장사꾼에게 열어 보인다는 것은 치부책을 보여주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달리 그러는 게 아니라 우리 얘기가 밖으로 흘러나가면 곤란해서…….”

최풍원이 말끝을 흐리며 홍만경의 표정을 살폈다.

“긴한 얘기라 은밀한 곳이 좋을 듯해서 그러오!”

최풍원이 틈을 주지 않고 연달아 말했다

“흐음……, 좋소!”

홍만경이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두 사람은 목계나루에 정박해 있는 배로 갔다. 그 뒤를 최풍원의 동몽회 회원들과 유필주의 뱃꾼들이 뒤따랐다. 역시 대선은 보기에도 묵직한 것이 듬직해 보였다. 달빛 한 점 없는 캄캄한 밤중이었지만 나루터 주막집마다 밝혀놓은 현등이 뱃전을 희미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배에는 뱃머리부터 고물까지 뱃전이 올라오도록 곡물 가마가 그득하게 쌓여있었다. 그리고 배 구석구석마다 물산을 지키는 무뢰배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강바람에 철썩거리는 물결소리만 들려올 뿐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실은 우리 북진에서 난장을 틀려고 하오.”

“그게 언제요?”

“이달 스무 여드렛날이오.”

“그렇다면 열흘이 채 남지 않았구려?”

“채비는 다 끝났소!”

최풍원이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내가 필요한 이유가 뭐요?”

“내 얘기는 전매할 특산물들을 곳간마다 그득하게 쟁여놓았단 말이오. 그런데 난장을 틀려면 그것만으론 부족하고 한양의 다양한 물산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오. 그러니 한양에서 올라와 목계에 머물고 있는 경상들을 우리 북진까지 올라올 수 있게 홍 선주가 힘을 좀 써주시오?”

“한양에서 가지고 온 물산들을 목계에서 팔아도 충분한데, 우리가 북진나루까지 갈 일이 뭐란 말이오?”

홍만경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목계에서 청풍의 북진나루까지는 물길로도 꼬박 하루가 걸리는 만만찮은 거리였다. 더구나 한양에서부터 싣고 온 물산들이 잔뜩 실려 있는 무거운 배를 북진까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북진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산이 있다거나 목계에서 얻는 이득보다 더 커야만 홍만경도 다른 경상들을 설득할 명분이 서는 것이었다. 남한강 물길은 한양에서 목계까지만 해도 그다지 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계를 지나 충주부터는 강바닥의 경사가 높아져 여울도 많아 수량이 부족할 때는 곳곳에 줄꾼들이 배를 끌어올려야 했으니 그 경비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홍 선주도 최풍원을 속이고 있었다. 한꺼번에 몰린 경상들의 물산들로 목계장에서는 값이 폭락했다는 것을 최풍원은 이미 윤왕구 객주로부터 듣고 난 후였다. 최풍원은 시치미를 떼고 홍 선주를 구슬렸다.

“북진에는 목계에서 구경할 수 없는 귀한 특산품들이 많이 있으니 당신도 구미가 당길 거요.”

“귀한 물건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겠소?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내어놓거나 틀어쥐고 내놓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오? 아무리 귀한 물건도 거래가 되야지!”

“한양 양반들은 모두가 깍쟁이라더니 그 말이 헛말은 아닌 듯싶소. 어찌 그리도 사람 말을 믿지 못한단 말이오? 사내 말 한 마디면 그것이 약속 한가지지, 뭘 또 한단 말이오?”

“돌아서면 남남인 장사꾼 말을 어떻게 믿고 북진까지 간단 말이오? 무슨 증서라도 하나 써준다면 몰라도.”

“그깟 증서가 무슨 소용이오? 한낱 종이쪽에 불과한 것을…….”

최풍원은 홍만경의 증서라는 말에 대수롭지 않은 듯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다. 될 수 있는 한 차후에 책이 잡힐만한 일은 피해서 일을 성사시키고 이득은 최대로 남기는 것이 장사였다. 평생을 그런 장사꾼들 사이에서 살아온 최풍원이 그렇게 호락호락 증서를 써줄 리도 없었고, 경강상인 홍만경도 그 나름대로 아무런 보장이나 이득도 없이 목계를 떠나 물길을 거슬러 북진나루까지 올라갈 리가 만무했다. 두 사람의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이어졌다.

“이보시오, 최 행수! 내일 아침 당장 목계장에 풀어놔도 불티가 날 물건을 더 좋은 조건이 아니면 구태여 그 고생을 무릅쓰고 뭣 때문에 북진까지 간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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