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렇게 되자 당장 먹어야 살 수 있는 곡물 값은 폭등했고, 생활하는 데 그리 급하지 않은 모시·베·명주·모피·종이 같은 특산품들은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이 이러한 호기를 놓칠 리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나 많은 미곡상들이 한꺼번에 몰린 탓에 쌀과 특산물 사이에 가격차가 별반 없었고, 오히려 쌀값이 폭락했기 때문에 경강상인들은 쌀을 하선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점만 잘 이용하면 경상들을 북진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걸세! 그리고 한양에서 온 홍만경 선주를 찾아가 보게”

충주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에게 홍만경이라는 경강상인을 소개시켜 주었다.

최풍원이 윤 객주 집을 나와 탄금대와 탑뜰을 지나 목계나루에 도착한 것은 저녁 해거름 무렵이었다. 목계는 한양으로 가는 육로인 영남대로와 물길이 직통으로 통하는 고을답게 나루터의 규모도 사람들의 북적거림도 북진과는 달랐다. 우선 나루터에 정박해 있는 배들부터 북진에서는 큰물이나 나갈 때 볼 수 있는 오백 섬 선적의 대선들이 즐비하게 닻을 내리고 있었고, 중선 크기의 배들과 작은 배들도 함께 어우러져 강나루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목계나루터 주변과 장터에 들어선 상전들의 규모 또한 북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역시 남한강 제일의 나루답게 번듯번듯하게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최풍원 일행이 나루터의 한 주막으로 들어섰다. 주막집은 각처에서 모여든 선주들과 담꾼들, 그리고 장사꾼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주막집에 들어선 최풍원이 주막집 주인을 찾아 뭔가를 주문했다. 잠시 후 주막집 주인이 키가 훌쩍 큰 사내와 함께 최풍원 일행이 앉아있는 주막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한양 마포에서 온 홍만경이외다.”

“난 청풍에서 온 북진여각 대행수 최풍원이오.”

최풍원이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허세를 부렸다.

“그래, 무슨 소간으로 날 찾으시오?”

경강상인 홍만경도 녹녹치만은 않았다.

하기야 평생을 장바닥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온 상인이 상대의 과장된 허세에 주눅들 리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한양의 깍쟁인데다 장사꾼 중에서도 가장 거칠다는 강상이었다. 한강에서 남한강을 오르내리며 장사를 하는 경상을 강상이라고도 불렀다. 강상들은 사잣밥을 싸들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 년 내내 땅바닥보다도 물 위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땅바닥도 위험한 일은 많지만 강물은 더더욱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불어치는 돌풍과 송곳처럼 물속에 숨어있는 암초들, 팔랑개비처럼 돌아치는 소용돌이와 낭떨어지기처럼 갑자기 내리쏟는 물길 속에서는 오백 섬이나 실을 수 있는 큰 배도 한 장 낙엽에 불과했다. 그런 거친 강바닥에서 평생을 살아온 홍만경으로서는 웬만한 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최풍원은 시골 장사꾼에 불과할 뿐이었다.

“허허! 뭐가 그리 급하시오?”

최풍원이 허드레 웃음을 흘리며 유필주에게 합석하기를 권했다.

“…….”

잠깐 동안 최풍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홍만경이 주막집 객방을 향해 말없이 돌아섰다.

“실은 충주 윤왕구 어르신 소개로 왔소!”

최풍원이 급하게 홍만경이를 불러 세웠다.

“그런데 어째?”

좀 전보다는 경계하는 낯빛이 수그러들었지만 홍만경이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최풍원을 대하고 있었다.

“장사꾼이 장사꾼을 만나자 할 때는 단 한 가지 이유밖에 더 있겠소?”

최풍원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홍만경이도 관심을 보였다.

장사꾼은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제일 기본이었다. 우선 상대의 속사정을 간파하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장사꾼들의 속성이었다. 그런 습성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속내를 쉽사리 보이거나 먼저 상대에게 손을 내미는 경우는 없었다. 감정에 휘말려 덥석 다가섰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만큼 장사를 망치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니 두 사람은 한순간이라도 경계심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좋소!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했으면 하는지 말해 보시오!”

“여긴 귀가 많으니 어디 조용한 곳으로…….”

“당신이 정하시오!”

“유 선주 배로 가는 게 어떨는지?”

최풍원이 홍만경의 배로 가자고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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