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현암사는 구룡산성 아래에 있어 구룡산성 답사 길에 다시 한 번 들렀다. 현암사에서 내려다보면 대청호반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보인다.

호수 주변에 조성한 공원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현암사를 가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대청댐 완공 후에 조성된 현암정이다. 현암정에서 바라보면 절벽 위에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는 절집을 발견하고 마음 졸이게 된다. 호수 건너 청남대 쪽에서 바라보면 더 아찔하다. 그러나 백팔 철계단을 밟고 올라서 보면 절은 그렇게 비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암사를 가기 위해서 현암정 주차장에서부터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오가리 장승공원 주차장에서 올라가면 제법 등산하는 기분이 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 30분쯤 올라가 산비탈을 10분쯤 더 걸어 모롱이를 돌아서면 바로 삼성각이 나오고, 이어 대웅보전이 초가집 처마에 붙은 제비집 같이 다가선다. 그래서 이 절을 예로부터 벽에 매달린 절집이라 하여 ‘현사’ 또는 ‘다람절’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대웅전에서 요사채로 내려서는 계단 아래 유명한 샘물이 있다. 샘은 바위 아래 있는데 예전에는 이 바위틈에서 쌀이 나왔다고 한다.

이 전설은 고려 광종 때 화진법사가 주지로 있을 때부터 전해져왔다. 어느 해 겨울, 폭설로 인근 마을 사람들은 물론 짐승들도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현암사에 있던 사미승과 화진법사도 배고픔이 점차 심해져 의식을 잃을 정도였다. 그때 법당 안에서 “법사는 바위 문을 열고 공양미를 얻도록 하라.”라는 부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진 스님이 기운을 차리고 그곳으로 가보니 과연 바위 구멍에서 쌀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쌀은 한 번에 꼭 한 끼를 해결할 정도만 나왔다. 그런데 며칠 후 수행승 열 명쯤 현암사를 찾게 되었다. 사미승은 열 명에게 공양을 주기 위해 쌀을 기다렸다. 그런데 쌀은 딱 한 명분만 나오고 그쳤다. 그래서 부지깽이로 쌀 나오는 구멍을 쑤셔 보았다. 그런데 쌀 구멍에서 쌀은 나오지 않고 쌀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올라오더니 이후로는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그 유명한 현암사 쌀 바위 전설이다. 그 후 그 쌀 바위에서는 물이 나와서 지금도 샘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아마도 수도승이나 중생들에게 지나친 욕심을 갖거나 매사에 조급하게 굴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쌀바위 아래 샘물에서 여신도들이 쑥을 씻고 있었다. 초파일이 임박해서 떡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쑥을 넣고 만든 절편이 참기름으로 화장을 하고 함지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고소한 냄새가 환각 속에서 풍겨 나온다. 침을 꼴깍 삼켰다. 시원하고 맑은 물이 소담하게 쏟아져 나온다. 목이 타서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신도님들이 쑥을 씻는데 열중하고 계셔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답사 이후에 다시 현암사에 가보니 이미 쌀 바위를 시멘트로 바르고 전기 수도를 설치해서 쌀바위 아래 샘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처님도 이제는 전기로 끌어올리는 물을 드시게 되었으니 세월의 변화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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