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하룻밤 가지고 아직은 기력 쇠잔할 내가 아니니 걱정 말거라.”

“서방님, 저 같은 것을 거둬주셔서 고맙습니다.”

미향이는 언제나 그랬다. 내가 남을 위해 베풀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항상 고맙다는 말을 버릇처럼 했다. 미향이의 이런 마음이 최풍원을 편하게 했다. 그것이 최풍원의 의욕을 더욱 북돋우게 만들었다.

최풍원이 날이 밝자마자 서두른 것은 목계나루로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최풍원은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경강상인들을 은밀하게 만나 담판을 벌일 작정이었다.

“강수야, 너는 날쌘 놈 다섯만 추려 놓거라!”

북진여각으로 돌아온 최풍원이 동몽회 대방인 강수에게 명했다.

“대행수 어르신, 어디로 출타하시려는지요?”

“목계!”

최풍원이 동몽회 대방인 강수에게 날쌘 아이 몇몇을 준비시킨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목계는 남한강 상류에 있는 나루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나루였다. 강원도 일대의 물산은 목계를 거치지 않고는 한양으로 갈 수가 없었다. 문경 새재나 하늘재를 넘은 경상도의 물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과 물산이 모이는 곳이니 난장이 서고 북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곳에는 으레 무뢰배나 찍자를 부리는 놈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그런 놈들은 장마당을 쏘다니며 낯선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등쳐먹고 사는 것에 이골이 난 놈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질구레한 일 때문에 동몽회원들을 대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풍원이 직접 목계를 내려가는 이유는 경강상인들을 은밀하게 만나 그들의 발길을 북진으로 끌어올리기 위함에 있었다. 그러니 모든 일을 목계 상인들 눈에 띄지 않게 비밀리에 진행해야 했다. 만일의 경우 그것이 목계 상인들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이면  자신들의 밥줄을 위협하는 최풍원 일행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한참 전부터 황강의 송만중 패거리들이 목계와 거래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혹여 그들이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모든 일이 일순간 수포로 돌아갈 것은 자명했다. 최풍원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최풍원은 목계로 내려가는 길에 먼저 충주 윤왕구 객주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충주와 목계는 지척에 있는지라 최풍원보다는 윤 객주가 그곳 사정에 밝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목계나루에는 경강선들만 수십 척이 넘게 정박해 있네. 그중 곡물들이 대부분 선적되어 있는데 태반이 짐도 부리지 못하고 있다네.”

“왜지요?”

“생각을 해보게. 장사꾼들이야 이득을 남기기 위해 발품을 파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 쌀이 한꺼번에 올라와 값이 폭락했다네.”

“지금 보릿고개를 만나 골골마다 인총들이 굶어죽는 판에 경상들은 어디서 그 많은 곡물이 났는가요?”

“공물을 바치고 그 대가로 궐에서 받은 대동미가 쏟아져 나온 탓 아니겠는가.”

“그게 이번에 풀렸는가요?”

조선의 세금 제도는 나라나 양반들의 땅을 소작하고 내는 토지세, 일 년 중 일정한 기간 동안 노동력을 나라에 바쳐야 하는 부역, 각지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을 조정에 바치는 세 가지로 크게 나뉘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중 가장 폐단이 심했던 세제 중 하나가 중앙 관서와 궁중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여러 군현에 부과하여 상납하게 한 특산품 징수였다. 이것을 공물이라 했는 데 이를 담당하는 관리들의 비리로 인해 온갖 방납의 폐가 속출하자 조정에서는 특산품 대신 쌀로 바치게 했다. 이것이 대동미였다. 그러나 쌀 외에도 조정 살림을 꾸리기 위해서는 여러 물품들이 필요했다. 이것들은 그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특산품들이 주종이었다. 이를 조달하기 위해 책임을 맡은 관리들은 공물 청부를 맡은 상인들에게 먼저 특산품들을 받고 그 대가로 나라에서 받아 보관하고 있던 대동미를 지급했다. 상인들은 이러한 대동미를 지방으로 옮겨 매각을 하거나 그 지역의 특산품과 교환함으로써 시세차익을 남겼다.

경강상인들의 대동미가 한꺼번에 목계로 몰린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장사꾼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득을 남기기 위해 다른 지역보다도 쌀값이 비싼 곳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목계를 비롯한 남한강 상류의 내륙지방은 벌써 삼 년째 계속된 흉년으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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