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누드: 미술작품에는 벗은 여자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5) 여성은 벌거벗어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

페미니즘 여성단체 ‘게릴라 걸스’ 뉴욕에 내건 광고 눈길
앵그르 ‘그랑 오달리스크’ 패러디…예술계 성차별 풍자
버스 광고판 등 이용해 정치적 메시지 담은 미술 선보여
“누드화 85% 여성 소재”…미술관 소장·전시정책 비판

게릴라 걸스 ‘여성은 벌거벗어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 1989(왼쪽).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그랑 오달리스크’ 1814.
게릴라 걸스 ‘여성은 벌거벗어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 1989(왼쪽).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그랑 오달리스크’ 1814.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1989년 “여성은 벌거벗어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포스터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바로 앞 큰 광고판에 붙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버스 광고판에 부착된 이 포스터가 뉴욕 시내를 돌아다녔다. 당시 오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이 포스터는 메트로폴리탄에서 개막하는 전시를 홍보하는 포스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패러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술적 공공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들은 게릴라 걸스(Guerilla Girls)라 불리는 페미니즘 여성 단체이다. 게릴라 걸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패러디의 대상이 된 원화를 먼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패러디의 대상이 된 작품은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그랑 오달리스크 (la Grand Odalisque’이다. 이 작품은 앵그르가 반복해서 그리던 오달리스크(투르크 지방의 왕인 술탄이 거느린 하녀) 작품들 가운데 역작으로 꼽힌다.

앞서 소개했던 ‘터키탕’을 비롯해서, 뒷모습의 오달리스크, 앞모습의 오달리스크, 누운 오달리스크 등을 그려왔던 작품들 중에서도 그랑(grand), 즉 ‘장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제목에 붙은 만큼 작품의 크기 역시 여성의 등신대에 가까운 대작이다.

오달리스크가 거주하는 하렘을 경비하는 남성들도 거세를 조건으로 했고 이곳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이들은 궁정에 거주하는 여성이거나 남성으로는 술탄뿐이었으니, 실제로 오달리스크를 보았던 남성 화가는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유럽의 제국주의 확산에 따라 오스만제국에 가까이 갈 수 있었던 이들이 하렘의 오달리스크의 존재를 기술한 저서를 출간했고, 오달리스크에 대한 소문은 남성들의 환상을 부추기며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프랑스의 앵그르 뿐 아니라 들라크루아, 부셰 등의 화가들이 오달리스크를 소재로 삼았고, 영국의 화가들도 오달리스크를 수없이 그려냈다.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볼 수도 없었던 오달리스크의 모습을 이국에 대한 상상과 온갖 성적인 환상을 담아 그려낸 작품들이 오늘날까지도 미술사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그 가운데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는 침실에 뒷모습으로 누워 고개를 돌려 화면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의 여인이다. 다리를 안쪽으로 굽히고 한쪽 다리를 다른 편 허벅지에 올려 몸의 유려한 곡선을 최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 이 자세로 누워 보면 대단히 자연스럽지 않은 자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누드의 여성이 오달리스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공직 깃털로 만든 이국적 부채를 들고 있으며, 화면의 오른쪽에는 향신료가 연기로 뿜어져 나오는 물건과 긴 담뱃대가 걸쳐져 있다. 푸른 커튼과 오달리스크가 누운 침대의 색이 어우러져 화면에 통일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이 푸른 색은 오달리스크의 살색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달리스크는 관객 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뒷모습의 누드 주인공이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인이라는 점을 추가로 알려주는 듯하다.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의 눈빛이 가진 도발성에 분노했던 관객들이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여인의 얼굴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하지만 ‘그랑 오달리스크’는 어딘지 어색한 부분도 눈에 띈다. 목으로부터 시작되어 엉덩이에 이르는 긴 척추가 너무 길지 않은가 말이다. 이 여인의 해부학적 불완전성에 대해 당대의 평론가들도 ‘척추 마디가 두세 개쯤 더 있는 것처럼 그려졌다’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또한 길게 뻗어 종아리에 가 닿아 있는 오른팔에 비해 왼팔도 지나치게 짧게 그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모를 리 없었던 앵그르는 여체의 둥글고 유연한 아름다움을 위해 길게 굽혀지는 등과 길었다 짧았다 하는 유연한 팔 길이를 일부러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당대의 해부학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역작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오달리스크들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한편 이 그림을 패러디한 게릴라 걸스는 이 작품의 해부학적 구조나 미학적 의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다. 앵그르가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표 화가이며 여성의 나른한 누드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대가였다는 지점이 아니라,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 이 작품은 미술관의 소장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여성은 벌거벗어야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는 작품제목과 동명의 문구가 볼드체로 크게 쓰여 있고, 그 아래 쪽에는 “미술관의 현대미술 부문에는 5% 미만의 여성미술가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누드화의 85%가 여성을 그린 것이다”라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과 전시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누드로 그려져 있는 여성이어야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고, 미술을 하는 여성들은 거의 들어갈 수 없는 곳, 그곳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면, 미술관에 여성은 벗어야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게릴라 걸스 그룹은 원래 이 작품에 뉴욕시에서 주는 예술 기금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논란을 일으킬 것 같은 이 작품에 대해 시는 기금을 철회했고, 회원들의 자비로 설치되었다. 버스 광고판에도 자비로 광고판을 점유해 많은 이들이 게릴라 걸스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지만, 버스 회사에서도 논란이 일자 더 이상은 이 광고를 게재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성공한 프로젝트였다고 평가될 수 있다. 공공미술은 어딘가 조각 좌대에 멋들어진 돌조각이나 금속조각이 앉아있어야 하는 것이라 여겨왔던 1980년대, 미술이 일상으로 파고드는 방식의 개발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던 시절, 게릴라 걸스는 광고판을 이용해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미술을 했다.

그렇다면 게릴라 걸스라는 그룹의 이름은 무슨 뜻이고, 참여하고 있는 실제 인물들은 누구이며 그 이름 아래 활동하고 있는 인물은 몇 명이나 되고, 이들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1985년에 결성된 게릴라 걸스는 여성 미술인들의 모임이지만, 미술인들 뿐 아니라 여성 미술평론가, 여성 미술사가 등 페미니즘 의식을 가진 미술계 여성들의 전방위적인 모임이다. 이들은 문제가 되는 미술관이나 전시행사에 고릴라 가면을 쓰고 나타나 현장의 행동주의자(activist)로 활동하기도 하고, 미술관이나 전시의 제도에 문제제기를 하는 포스터와 문건으로 도시를 도배하거나, 자신들만의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날 때는 늘 고릴라 가면을 쓰고 나타나며 철저하게 익명을 유지한다.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미술사에서 존경받을만한 여성 미술가들의 이름, 예컨대 조지아 오키프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프리다 칼로 등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최초의 모임에서 ‘게릴라 걸스’라고 그룹 이름을 먼저 만들었는데, ‘게릴라guerilla'라는 철자를 누군가가 ’고릴라gorilla'라고 잘못 표기했고, 이것을 계기로 고릴라 가면을 쓰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이들은 미술사에 관한, 그리고 여권 뿐 아니라 인권 전반에 관한 저서도 여러 권 발간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것만도 두 권이나 된다.

2019년 현재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최초로 제기한 누드의 문제, 왜 여성 누드가 이렇게 많아야 하는가, 왜 여성 미술가는 미술계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서 사들인 소장품들, 그리고 전시들의 성비를 살펴보면 이들의 문제제기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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