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대행수 영감은 저보다 일이 더 급하시옵니까?”

미향이가 짐짓 토라진 몸짓으로 외면을 했다.

“미안하구나. 내 마음이 급해서…….”

최풍원이 미향이를 돌려세우며 허리를 감싸 안았다.

“심려 놓으시어요.”

미향이가 부끄러운지 최풍원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 고생이 많았구나.”

최풍원이 경강선을 따라다니던 미향이를 애첩으로 삼게 된 것은 경상들로부터였다. 한양의 양반집 규수였던 미향이가 타고난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숙정문 밖을 드나들며 한량들과 놀아나자 집안에서 내침을 당한 것이었다. 그후 팔도를 떠돌며 뭇 사내들을 섭렵하던 미향이가 청풍에 온 것은 경강상인들에 의해서였다. 경상들에게 거액의 빚을 지고 있던 미향이를 최풍원이 구해 주었다. 그리고는 청풍 읍내에 집 한 칸을 마련해 주었다. 최풍원은 북진여각을 운영하며 청풍관아와의 관계 맺기가 꼭 필요했고, 미향은 청풍에 부임해 오는 신임부사나 벼슬아치들을 상대해 주며 최풍원이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며 청풍에 안주하게 되었다. 그것이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었다.

“미향아, 이제 그만 내 집으로 들어오지 않겠느냐?”

최풍원이 미향이 허리르 풀며 은근하게 물었다.

“서방님, 산과 계집은 멀리서 바라볼 때가 좋답디다.”

미향이가 최풍원의 가슴에 안긴 채 말했다.

“어찌 산과 계집 뿐이더냐? 세상 만물의 이치가 다 그런 것 아니더냐? 가까이 하면 갖은 칠정이 뒤섞여 아비규환인 것을…….”

“그걸 아시면서도 저를?”

“꽃이나 계집이나 울 안에 들여놔야만 내 것 같지, 바깥으로 돌면 남의 물건 같지 않겠느냐?”

“서방님 진정이옵니까?”

 “그래!”

“서방님, 가까이 두어도 마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요? 저를 받아들여 집안에 분란이 나는 것보다야, 이렇게 보고 싶을 때 한 번씩 날아들어 정을 나누는 것이 어떠실는지요?”

“마누라도 없는 내가 집안에 분란이 있어날 게 무엇이더냐?”

“서방님, 미향이도 가시가 많은 년이옵니다. 지금이야 서방님이 멀찍이서 어여삐 보아주시니 곱고 부드럽게만 보이지, 실상 안으로 들여놓으면 미향이도 여느 아녀자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사옵니다. 투정하고 질투하고 욕심 부리고. 미향이는 지금 이대로가 좋사옵니다.”

“너라고 평생 꽃일 줄 아느냐?”

“시들면 그땐 그대로 또 어떻게 되겠지요. 서방님을 믿으니까요. 저는 이미 서방님 마음속에 충분히 들어가 있사옵니다.”

미향이가 최풍원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아양을 떨었다.

“이놈아, 불이나 꺼야지. 계집이 어찌 부끄러운 것도 모른단 말이냐?”

오히려 최풍원이 몸을 뒤로 빼며 미향이의 깍지를 풀려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서방님이 이깟 일로 뭐가 부끄럽다고 그러시어요?”

두 사람이 쓰러졌다. 미향이의 속살처럼 투명한 달빛이 장지문을 뚫고 은은하게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흡사 엉킨 두 마리 뱀처럼 최풍원과 미향이는 떨어질 줄 모르고, 두 사람의 몸놀림이 격렬하게 이어지며 이울어 가는 달이 아쉽기만 했다.

문살 사이마다 박 속 같은 하얀 달빛이 그득하게 차고 밤새 피를 토하듯 울어대던 소쩍새도 지쳤는지 지는 달을 따라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④ 최풍원 목계장으로 내려가다

청풍 읍내에 있는 미향의 집에서 밤을 보낸 최풍원은 이튿날 해가 뜨기도 전에 북진으로 건너가기 위해 서둘렀다. 들창 너머로 들어오는 식전바람이 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강바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미향이로 인해 생기는 힘이었다. 미향이에게는 이상한 마력이 있었다. 미향이와의 밤을 지내고 나면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무슨 일이든 쉽게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방님, 아침 진지는 들고 떠나셔야지요?”

어느새 일어났는지 밖에서 들어오며 깨어있는 최풍원을 보며 미향이가 말했다. 미향의 몸에 묻어온 바깥 기운이 최풍원의 얼굴에 닿았다.

“아니다. 오늘은 서둘러야 한다.”

“간밤에 그렇게 힘을 쓰셨는데 뭐기를 곡기를 채우고 떠나셔야지요. 서방님이 청춘인 줄 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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