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100년 체전(體典), 50년의 추억
[김병연 칼럼]100년 체전(體典), 50년의 추억
  • 충청매일
  • 승인 2019.09.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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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충청매일] ‘전국체전’이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50회전국체전이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열렸다. 그때가 대학4학년! 전국체전선수로 참가하면서 난생 처음 서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서울역, 남대문, 염천교, ‘단장의 미아리고개’!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보니 감회가 새롭다.

서울에는 꼭 찾아봐야할, 한 살 아래 사촌 동생 ‘병구’가 있었다. 우리는 소꿉시절부터 말다툼 한 번 없이 다정하게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을 농사짓는 바람에, 그와 나는 읍내 중학에 함께 입학하였다. 입학식을 마치고 시골뜨기 두 소년은 교문 밖 제방 길을 걸어 나니, 마침 읍내 사는 신입생들이 시골뜨기인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못들은 척’ 참을 수 있었으나, 귀를 잡아당기는 등! 굴욕을 견디다 못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체격이 작았지만 그는 타고난 쌈꾼이었다. 나는 제방 아래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옆에서 구경하던 동생은 “형 어째 그렇게 힘도 못쓰지?!”라며 안쓰러워했다. 

그로부터 9년! 동생은 상경하여 ‘요꼬공장(옷짜는 공장)’ 직공으로 일한다고 들었다. 전국체전의 경기가 끝나고 버스를 서울역 앞에서 탔더니 2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곳이 신림동이었다.

“이곳에 ‘요꼬공장’이 어디요!”

“여기에는 요꼬공장만도 100개가 넘는다오!”

그래도 나는 ‘서울서 김서방을 찾는다’는 격으로 무턱대고 ‘병구’를 찾았다. 그렇게 세 번째 집을 들르니 “형! 어쩐 일이야!”라는 소리가 들렸다. ‘병구!’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정말 기적 같은 만남이었다. 마침 ‘연길’이라는 고향친구도 불러서 왔다. 우리는 ‘돼지고기와 막걸리’로 가을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마셨다. 그의 숙소는 큰 창고 구석에 마련된 서까래를 엮은 2층이었다. 서까래 위에 담요를 깔고 우리들은 누워서 “낯설은 타향땅에!”를 목청껏 불렀다. 우리 셋은 더없이 행복하였다.

그로부터 50년!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더니, ‘병구’와 ‘연길’이는 모두 다정한 가정을 이루고 성공하였다. ‘병구’와 난 금년 추석에도 함께 차례를 올렸다. 그는 손자가 둘이고, 나는 셋이 되었다. ‘한마당에 팔촌 난다’더니, 손자들끼리 촌수가 벌써 ‘팔촌’이 되었다. 사촌과 나는 기념사진도 찍었다. 매년 구정과 추석은 사촌이 함께! 큰집과 작은 집을 합치니 20여명은 족히 되었다. 우리 둘은 50년 전 추억이 어제같이 생생하였다.

“뭉쳐라! 서울에서, 뻗어라! 대한민국.”, “ 백년빛난 화합체전, 서울에서 천년까지” 금년 10월 4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100회 전국체전의 구호이다. 전국체전은 1920년 서울배재고등학교에서 열린 ‘제1회조선인야구대회’를 효시로 하여, 금년 서울의 전국체전은 ‘100년의 상징성을 기리고, 미래 100년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추석 차례를 마치고 술잔을 나누며, 사촌동생은 “형은 크게 성공하였지만, 나도 작게나마 성공했다고 생각해! 누구도 부럽지 않고 만족해!”라고 한다.

“아니야! 사실은 동생이 더 크게 성공한 거야!”라고 덕담을 나눴다.

‘100년 체전, 50년의 추억!’ 나와 사촌동생은 이렇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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