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환절기, 콧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계절이 바뀐다는 징조일까. 책을 읽는 일은 아련하고 절실하다. 더는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고보면 책은 한가하거나 절박하거나 할 때 생각해 내게 된다. 그 안에 답이 있기 때문일 수도, 근심없이 책을 펼쳐드는 여유가 그리워서일 수도 있다. 바람이 많고 기온이 서늘해지는 날들이 늘고 있다. 미각을 달큰하게 만족시킬 먹을거리들 찾아나서는 일도 나름 그럴듯 하겠으나 습관처럼 길 모퉁이 책방에 들러 책을 고르고 집에 돌아오는 일, 일상에서 책 속의 세계로 잠깐씩 외출하는 일은 어떨지, 나다니는 일도 심드렁해질 어느 무렵에는.

세계적 명성의 개성만점 작가, 레인 스미스의 ‘그래, 책이야!’는 책을 읽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숭이 몽키와 당나귀 동키는 각각 책과 노트북을 보면서 마주앉아 있다. 전자기기에 익숙한 동키에게 책은 낯선 물건이다. 가까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계속 들여다 보는 몽키에게 스크롤은 어떻게 하는지, 게임이 되는지, 메일을 보낼 수 있는지, 와이파이와 트위터는 어떤지 노트북으로 하는 일들을 기준으로 묻는다. 컴퓨터처럼 변화무쌍한 경험을 할 수 없는 책을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는 몽키가 신기할 뿐이다.

그러다가 동키는 자기에게 도무지 관심이 없는 몽키의 책을 가져다 ‘보물섬’의 한 쪽을 읽는다. 글씨가 너무 많다고 하면서도 금세 책 속으로 빠져든다. 동키가 손에서 책을 놓지 앉자 몽키는 다른 책을 구하러 도서관으로 향한다.

이 ‘그래, 책이야!’의 표지 그림부터 독특하다. BOOK이라는 글자 중 한 글자에 몽키의 얼굴을 그려 넣어 책에 푹 빠져 있는 모습에 그 이유가 궁금해지게 한다.

컴퓨터로 많은 것들이 소통하는 시대에 진지하고 어려운 설명 대신 간결하고 선명한 그림,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주인공들의 대화로 책이 주는 다른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책을 보는 일이 아주 잠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누구라도 금방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는 권유도 슬쩍 곁들인다.

속표지에는 책에 빠져 노트북을 들고 오는 친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엇을 들고 있는지 묻는 동키에게 ‘책이야.’ 라고 짧게 답하고 동키의 계속되는 질문에도 “이건 ,책이야.” 라고 무심한 듯 답하며 책에 열중하는 몽키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주위에 무관심한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책은 이런거야.’ 를 한 문장으로 강조 정리해 준다.

미디어에서 모든 재미를 찾았던 동키는 그 세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맛을 느끼며 다음 내용이 궁금해 진다. 마침내 동키도 독서의 세계로 입문해들어가는 것이다. 특별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이가 있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기회가 닿고 시작하기만 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대조적인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다. 네시간 반을 꼼짝 않고 책만 보는 동키의 모습이 여섯 컷의 슬라이드로 멋지게 처리된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잘 그려냈다고 하겠다. 책을 엄두 못내는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솔깃한 방식이다.

책을 보는 동키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만이 아니라 독서라는 멋진 세계를 공유하며 더욱더 멋진 우정을 다질 것이다. 사는 일에서 책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정보 때문에, 지식 때문에, 심심해서,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게 궁금해서 등등 여러 이유로 책을 잡기도 하고 잡지 못하기도 할텐데, 환절기에는 쉬기 위한 독서도 시도해 봄직하다. 재미있는 그림책을 펼쳐들고, 심각하지 않게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표정 변화를 보면서 한바탕 웃는 일은 좋은 휴식의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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