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부사 영감, 지난 가을 금수산과 월악산 일대에서 캔 산삼 두 채이옵니다.”

“무어! 산삼 두 채?”

어떤 일에도 가볍게 몸을 움직이거나 동요하지 않는 뼈대 있는 양반이라도 산삼 두 채라는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풍원이 흰 보자기에 싼 보따리를 슬쩍 내밀었다. 매질에는 견뎌도 돈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산삼 스무 뿌리는 이제껏 거드름을 피우던 이현로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청풍관아에는 일 년 내내 찾아드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역로보다 빠른 뱃길이 한양과 곧바로 연결되는, 청풍 주변의 빼어난 자연 경관을 보기 위해 사시사철 찾아드는 행세깨나 하는 한양의 세도가들로 청풍부사는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그런 지존들을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출세 길과 직결되는 그런 세도가들을 소홀하게 대했다가는 대궐의 내직은 맛도 못 보고 평생 외직만을 돌며 무지랭이들과 휩쓸려 살아야 하니 무엇이라도 손에 쥐어 보내야 했다. 그러려면 항시 관아 곳간에 귀한 물산들을 그득하게 채워놓고 있어야 마음이 든든했다. 그 곳간을 채워주는 사람이 북진여각의 최풍원이었다. 장사꾼인 최풍원이 거저 부사에게 상납할 리는 천부당만부당했다. 최풍원은 청풍관아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해주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세곡운반권이나 관아의 잉여분을 받아 처분하며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주는 만큼 몇 배를 불려 받아내는 것이 장사꾼들의 생리였고, 이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양반에게 권력이 힘이라면 장사꾼들에게는 돈이 힘이었다. 돈 생기는 일이라면 똥이라도 찍어먹는 것이 장사꾼이었다. 최풍원 또한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장사를 아무리 해도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 한 큰돈을 벌기 힘들었다.

“부사 영감, 이번 난장에서 도가권과 잠상을 단속할 관리권을 제게 주셨으면…….”

신임부사가 어찌나 깐깐하게 구는지 최풍원이 이현로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나라에서 도고를 금지하는 것을 모르는가?”

“부사 영감, 공에도 사가 끼는 법 아니겠습니까?”

“어험.”

도가는 도고를 말하는 것이었다. 도고는 일종의 상행위로 매점매석을 하여 매매조작을 하고 가격상승을 노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상품수송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한양은 천도 당시부터 행정 도시로 꾸며진 완전한 소비지였다. 모든 물품의 조달은 지방에서 한양으로 옮겨져야 했지만 마소나 배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자 곳곳에 생겨난 것이 미리 물산을 확보해서 쌓아놓는 창고가 필요했다. 이것이 도고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도고의 폐단은 너무나 컸다. 장사꾼들은 관아와 결탁하여 농민들의 곡물을 헐값에 강제로 사들이고, 정작 백성들이 필요로 할 때에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물건을 숨기고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일어난 폭동이 삼 년 전 한양 삼개나루에서 일어난 쌀 파동이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수백 명의 성난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켜 삼개나루 일대의 가게와 창고를 불태웠다. 이 난리로 주동자의 목이 효수되고, 도고를 일삼던 장사꾼들이 유배를 가기도 했다. 이후 조정에서는 강력하게 도고를 금지시켰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최풍원은 신임부사 이현로에게 북진난장에서 모든 물산을 독점하여 매매할 수 있는 특권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 사람아, 무엇이 그리도 급한가? 안직 초저녁인 것을.”

이현로가 산삼과 도고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역력하자 형방 김개동이가 얼른 끼어들며 최풍원을 저지했다. 이현로가 헛기침만 해댔다.

“부사 영감, 송구스럽습니다요. 대신 지가 약주 한 잔 올리겠사옵니다.”

최풍원이 잔을 씻어 올리자 이현로가 못이기는 척 잔을 받았다.

“이보게, 최 행수! 이번 조운선 갈 때 영감님 본댁에 뭘 좀 푸짐하게 올려 드리게.”

이현로 곁에 앉아있던 이방 민겸이 술을 올리기 위해 다가간 최풍원에게 말했다.

“정말이신지요? 이방어른!”

최풍원의 입이 화들짝하게 벌어졌다. 지금까지 청풍관아의 세곡운송은 한양의 경강상인들이 도맡아 왔었다. 세곡 운반권 같은 중요한 일을 아전들 단독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방 민겸의 말 속에는 세곡 운반권을 최풍원에게 주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부사와 아전들 사이에 어떤 결정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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