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봐, 최 행수! 이리로 오시게.”

음식상이 차려진 내실 방문 앞에서 수그리고 있는 최풍원을 형방이 불렀다. 최풍원이 무릎으로 기며 상 끝으로 다가갔다.

“북진여각에서 어젯밤 일을 벌렸더구먼?”

형방 김개동이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최풍원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역시 형방은 개 코였다.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황강객주 송만중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인정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넘어가면 그뿐이었다. 그렇다고 송만중이가 관가에 고변하거나 객주집에서 일어난 일을 본 목격자를 내세워 봉화수를 고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보았자 자신만 더 불리하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송만중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풍관아는 최풍원의 돈줄로 사방팔방 묶여 있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송만중이 관가에 고변을 해봤자 되레 자신이 무고죄로 화를 덮어쓰거나, 설령 최풍원이 잡혀간다 하더라도 곧 풀려날 것이 분명한 터에 괜한 일을 만들어 아까운 힘을 허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무슨 말씀이시우? 형방 나리.”

최풍원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뗐다.

“최 행수, 다 알고 있는데 웬 오리발이요?”

뻔한 일을 모르는 척 시침을 떼는 데도 애당초 형방 김개동이는 최풍원을 몰아치거나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는 듯했다.

“제놈들끼리 붙었는가 보지요.” 

“당신 수하들이 그랬다고 밀고한 사람이 있는데도?”

형방 김개동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어찌 그렇게 심하게 했는가?”

“부사 영감도 기신데 기분 좋게 약주나 한 잔씩들 허시지요? 지가 오늘은 섭섭잖게 해드리겄습니다.”

최풍원이 굽신거리며 슬쩍 화제를 돌렸다.

“뭔가 켕기는 게 있긴 있는가 보군, 최 행수?”

형방 김개동이가 짓궂게 물고 늘어졌다.

“너희들은 뭘 하구 있느냐? 부사 영감께 약주를 올리지 않고.”

최풍원이 목석처럼 앉아있는 기녀들에게 설레발을 쳤다.

“부사 영감, 이것 좀 드셔 보시지요.”

최풍원이 상 위에 차려져 있는 갖가지 음식들 중 금빛을 띄고 있는 생선을 부사 앞으로 옮겨놓으며 말했다. 이현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방, 이게 무언고?”

최풍원의 호의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이현로가 생전 처음 보는 생선인지라 옆에 앉은 이방 민겸에게 그 이름을 물었다.

“이게 황소 한 마리와 자기 살 한 점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이 고장 특산품, 금린어이옵니다.”

“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금린어로구나.”

이현로가 젓가락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황쏘가리의 살점을 떼어내며 말했다.

금린어는 황쏘가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민간에서는 금빛을 내는 고기를 황쏘가리라고 불렀으나, 지체가 존엄한 양반들이 강가 상놈들이 쓰는 말을 함께 쓴다는 것은 격조가 떨어지는 일이었으므로 문자 자랑을 하느라 비단 금자, 비늘 린자, 고기 어자를 써서 금린어로 부르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강마을에서는 ‘황쏘가리 살 한 점은 황소 한 마리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만큼 귀한 물고기라는 말이었다. 잡히는 즉시 공납을 하거나 암거래되어 세도가들의 수중으로 흘러 들어갔다. 워낙에 귀한 물고기라 특별한 날에 쓰거나 웃전에 선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 이번 황쏘가리도 부사 이현로를 대접하기 위해 특별히 하진객주 우홍만에게 부탁하여 구해 놓은 것이었다. 청풍에서도 나기는 했지만 수심이 깊어 잡기 힘든 황쏘가리는 수심이 얕거나 여울이 몰아치는 바위가 많은 곳에서 잡히기 때문에 청풍보다 강물이 깊지 않고 여울이 많은 상류 쪽 하진이나 매포, 영춘에서 잡히는 특산품이었다. 부사 이현로가 황쏘가리의 살점을 입 속에 넣고 오물오물 맛을 보았다. 역시 양반은 양반이었다. 그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쩝쩝거리며 소리를 내거나 입을 벌려 씹지 않으니 근본도 모르는 상놈과는 무엇이 달라도 사뭇 달랐다. 그러면서도 아주 조금씩 서너 차례 계속해서 황쏘가리로만 젓가락이 갔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