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내 안에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것들을 담아왔다. 그중 잊고 싶은 것들도 많지만 왠지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오히려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일들은 하나 둘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되돌릴 수 없는 아픈 상처들뿐인가. 차라리 다 비워버리고 싶다.

내가 태어났던 날은 모두가 좋아했을 것이다. 단 한 사람만이 산통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하듯 나의 시작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내가 주변을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 이전의 나는 내 기억 속에 없다.

내가 나를 알기 시작한 것은 내 주변의 사물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것 같다. 가족, 친척, 이웃, 마을, 지역, 나라, 세계. 이렇게 모든 것을 알게 됐지만 정작 내가 나를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 안에 나와 같은 내가 있다는 것을. 같은 나이지만 겉과 속이 다르다. 같은 듯 다른 나다. 성격과 생각, 추구하는 방향성 욕심 모두가 다르다. 무엇이든 다 차지하고 싶어 하고 지기 싫어한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모든 것들을 독차지 하려한다. 형체를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려고 한다. 다른 듯 같은 나는 다행히 궁합은 잘 맞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함께 잘 살아왔다. 같이 오래 살아와서 그런지 서로를 이해하고 협조를 많이 하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 진정시키며 다독여주고 감싸준다. 서로를 잘 알고 있기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한다.

내가 잠든 사이 나는 나를 빠져나와 이곳저곳으로 나 다닌다. 여행도 다니고 오랜 친구도 만난다. 먼저 떠나가신 조상님들도 가끔 만나 가족의 끈이었음을 확인한다. 정처 없이 날아다니며 세상 간섭을 다하고 다니기도 한다. 때로는 무서움에 떨기도 하고 슬픔에 젖어 흐느끼기도 한다. 육체와 떨어져 있기에 홀가분하게 어디든 마음껏 다니며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 다닌다. 그러다 밤새 바다 속에 잠겨있던 태양이 바닷물을 탈탈 털어내며 솟구쳐 오를 무렵이면 나는 다시 내안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일어난다.

존재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느껴지는 나다. 갈등을 갖지 않고 한마음으로 살아갈 때 내가 돋보일 것이다. 내가 나를 무시하고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면 나의 앞날은 밝아올 것이다.

언제나 함께인 나와 나. 내가 나를 버리고 떠나는 날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서로를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보아야 하겠다. 누가 먼저 배신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배신하지 않게 서로를 신뢰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늦게 알게 된 나이지만 이제라도 서운하지 않게 잘 보살피며 살아가겠다. 만나서 반갑다. 우리 오래도록 함께 즐기며 살아보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