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고려가 건국되며 개경을 수도로 삼았지만 천년 역사의 뿌리 깊은 문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하늘재는 고려 건국 이후에도 오랫동안 개경과 경주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그러다 하늘재가 급격하게 쇠락한 것은 그로부터도 오백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였다. 조선이 건립되며 육운과 해운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그런 면에서 경상도 동남쪽에 치우쳐있는 경주나 울산은 지리적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자 육로는 물론 낙동강을 이용할 수 있는 해운, 그리고 일본과의 교류가 편리한 부산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조선은 개창 직후부터 천도한 한양에서 부산을 잇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이때 신설된 곳이 영남대로였다. 영남대로는 한양에서 개성·평양·의주를 거쳐 대륙으로, 한양에서 충주·상주·대구·밀양·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큰길이었다. 그 길목에는 예로부터 전통적인 오대 도시인 의주, 평양, 서울, 충주, 부산이 위치해 있었다. 영남대로는 부산에서 의주가지 가는 곧은길이고 최단거리였다. 그런데 이 길은 신라 때부터 이용해오던 하늘재를 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남쪽에 충청도 연풍과 경상도 문경을 연결하는 새로운 고갯길이 개척되었다. 그 고개가 바로 문경 새재였다. 문경 새재가 개통된 이후 대부분의 물류가 이곳으로 옮겨갔고 하늘재는 점점 퇴락해갔다. 이제는 팔도의 나그네들도 영남대로의 문경새재로 발걸음을 옮겨가고, 번성했던 하늘재와 역원도 수풀 속으로 묻히게 되었다.

“형님, 하늘재 넘어 관음까정은 가야 목이라도 축일 주막이 있으니 서두릅시다요!”

오슬이가 점차 깊어지는 협곡 사이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렇게 입을 놀리는 것을 보니 아직도 덜 힘든 게로구나!”

포암산과 주흘산에서 흘러내리다 뭉쳐 솟은 탄항산이 하늘재 양편으로 성벽처럼 솟아 있었다. 아무리 고갯길이 험해도 사람들 왕래가 잦았던 이전에는 이처럼 호젓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늘재를 넘던 길손들이 새재 쪽으로 옮겨가자 나그네들이 머물던 객방도 고사리 쪽으로 많이 늘어나고 옛 고개는 주막조차 찾기 힘들어졌다. 봉화수 일행은 영남으로 가기 위해 오래된 하늘재를 넘어갔다.

 

③ 최풍원, 청풍부사 이현로를 만나다

 

한편 북진에 있는 최풍원 대행수는 청풍부사 이현로를 아전들과 함께 청풍 버드나무집으로 초대했다. 버드나무집은 청풍 읍내는 물론 남한강을 오르내리는 한양의 경상들에게도 잘 알려진 기방으로 웬만한 거상들은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문턱이 높은 집이었다. 하룻밤 술값이 황소 한 마리 값이라는 둥, 아니면 가난한 열 집 식구 일 년 양식 값보다도 더 많다고 소문이 난 집이고 보니 여느 사람들은 아예 출입할 수도 없는 비싼 술집이었다. 그렇다고 돈만 있다고 드나들 수 있는 집도 아니었다. 색주집이나 주막과는 달리 지체 높은 양반이나 선단을 거느린 거상 정도는 되어야 문이 열리는 그런 집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이기는 했지만 청풍부사가 온다는 말에 버드나무집은 초저녁부터 난리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람 삼아 한양에서 내려온 지체 높은 양반이거나, 충청좌도나 강원도?경상도 지역으로 부임을 하는 관리들이 뱃길로 한양에서 청풍에 당도한 후 피곤한 여정을 하루쯤 풀고 가기 위해 머무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청풍에서 제일로 높으신 양반은 부사였다. 청풍부사로 내려온 고을 원은 시시때때로 한양에서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치다꺼리로 일 년 중 무수한 날을 향응으로 날을 지새웠으니 버드나무집에서는 매우 귀한 손님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오늘은 신임 부사 이현로가 청풍에 온 뒤 처음 하는 발걸음인데다, 남한강 인근에서는 제일 부자라는 거상 최 행수가 마련하는 자리인지라 버드나무 집에서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늘 하루 안채 모든 방은 아예 손님을 받지 않았고, 제일 큰 내실에는 버드나무집 여주인 영모의 독려 아래 부사 일행을 맞을 준비로 종일 부산했다.

해가 기울며 멀리 금수산 상봉 끝자락만 한 뼘 만큼 해 꼬리가 남아 있었다. 금수산은 사시사철, 하루 한시도 같은 모습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얼굴을 달리 하며 시시때때로 바뀌는 빼어난 모습은 금수산의 신비로움을 더했다. 청풍 읍내와 북진나루 사이를 흐르는 청풍 호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강 건너 북진나루에도 종일 물길에 지쳤을 황포돛배 서너 척이 닻을 내린 채 정박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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