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충청매일] 봄이 올 때는 소리 없이 오고 갔지만 가을은 낙엽이 부서지는 아픔이 있어 풀벌레마저도 슬피우는 것 인가. 봄비가 내리면 봄을 재촉하고 가을비 내리면 가을이 빨리 온다. 가을 태풍 ‘링링’의 거센 바람에 사과나무 뿌리째 뽑히고 비닐하우스가 날아갔다. 세상이 요란한 가운데 추석 명절과 함께 가을이 성큼 다가 왔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어쩐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제는 초록빛들과 산이 조금씩 퇴색해지면서 무성했던 들녘도 황금빛으로 가을이 익어간다. 그토록 화려했던 뜨거운 햇살도 무너져가고 맑게 다가오는 가을 하늘은 높아만 진다. 낮과 밤의 기온 차는 결실을 촉진하는 계절, 가을이 익어간다. 짧아만 지던 아가씨들의 바지, 옷차림도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쪽빛 하늘아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여린 미소가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무르익어가는 희망, 풍성한 꿈으로 가득한 높은 하늘을 그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뜰에 나아가 가슴을 열고 가을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려 보고 싶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에 시달리던 고통을 덜어주는 여름의 끝자락, 밤낮없이 돌던 선풍기 소리도 이제는 사라질 때가 된 것 같다. 또 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틀어 찜통더위를 달래보지만, 절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국민의 도리를 외면하고 어찌 마음 놓고 냉방기를 틀 수 있을까.

아직도 한낮이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여름은 떠나기 싫어 끈질기게 미적거리고 있지만 오곡(五穀)백과(百果)가 익어가는 가을 향기 가득한데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가을 노래 한곡 불러보면 어떠할까. 그냥 들으면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차라도 한잔하면서…….

“아-으악 새 슬피우는 가을 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일제 말기 암울했던 시절 가수 고복수가 부른 가을이 오는 소리 ‘짝사랑’이다,

가을은 기쁨의 계절이요 땀 흘린 보람을 누리는 계절인데 여름날 내내 그늘에서 이슬만 먹고 울던 매미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알알이 익어가는 들 역에는 땀 흘려 가꾼 풍성한 수확을 즐기는 농부의 즐거움이 있고, 추수에 바쁜 농기계소리만이 요란하니 그것이 가을이 오는 소리처럼 들린다. 가을이 오면 먼- 옛날 고향집 뒤뜰 밤나무에서 밤새도록 ‘뚝 뚝딱’ 하고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새벽잠을 설치며 알밤 줍던 유년시절이 그립기만 했다.

여름날 그렇게 무성했던 나뭇잎은 힘을 잃어가고, 오색찬란한 단풍이 들 때!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는 서글픈 가을! 인생도,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가는 것 일까. 올해도 기러기떼 날아가고 삭풍(朔風)이 나무 끝에 일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이 깊어지면 ‘바스락! 바스락’낙엽 밟는 소리 들리는 가을 밤! 둥근 달을 쳐다 보면서 가는 세월 살아온 추억을 그리는 때가 오겠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 떠나기 아쉬워 슬피 우는 풀 벌레 소리 들으면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편안하고 행복한 가을이 되기만을 두 손 모아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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