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저 여기저기 유람이나 하며 세상구경을 하러 다니는 중입니다. 안 그러냐? 오슬아!”

봉화수가 곁에 있는 오슬이를 부르며 주인의 예봉을 피했다.

“그렇습니다요, 나리!”

오슬이가 순간적으로 봉화수와 자신을 주인과 종 사이로 위장했다.

“참으로 팔자는 늘어질 대로 늘어진 팔자들이구려. 죽어라 일해도 살기 힘든 이런 시절에 무슨 팔자로 양반이 되어 세상 유람이나 다니니.”

주인이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섰다.

주막집 안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저녁을 마친 후 무료함을 달래느라 힘자랑 내기씨름판이 벌어졌다. 사람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내기가 있기 마련이었고 고향에서는 힘깨나 썼다고 자랑하는 인사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구경꾼들이 둘러서서 두 편으로 갈리고 각 편에서 내세우는 장사가 가운데로 나섰다. 한 사람은 마흔은 족히 넘어 보였으나 기골이 장대했고 또 한 사람은 스물을 갓 넘긴 듯 앳된 얼굴이었지만 차돌맹이처럼 단단해 보였다.

“뭘 걸겠수?”

심판이 갈라진 편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지는 편이 탁배기와 안주를 사기로 합시다!”

“좋소! 좋소!”

“그럼 세판 양승으로 합니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동의를 하자 두 장사가 저고리를 벗어부치고 가운데로 나섰다. 구경꾼들은 흥분이 되어 미리부터 소리를 지르며 야단들이었다. 두 사람은 용호상박이었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는 힘으로 밀어부치고 젊은 장사는 상대 힘을 이용하며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젊은 장사는 계속해서 힘에 밀리며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이는 힘이 솟는 듯 공격횟수가 늘어나고 그와는 반대로 사내는 숨을 몰아쉬며 점점 밀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바람 맞은 산초 같이 겉만 번지르르 하지 허깨비구먼.”

“누룩돼지 같이 살만 쩠지 속빈 강정이구먼. 빨리 끝내고 술이나 얻어먹자고.”

일단 한판을 이긴 편에서 야유를 하며 놀려먹었다. 장년의 사내가 식식거리며 일어났다.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사내가 젊은이를 초반부터 번쩍 허리 위로 들어올렸다. 체신이 작은 젊은 장사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사내가 젊은이의 혼을 빼기 위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장년 사내를 택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젊은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미처럼 사내 가슴에 찰싹 달라붙었다. 사내가 달라붙은 젊은이를 머리 위로 넘기려고 허리를 뒤로 한껏 제켰다. 순간 젊은이의 다리가 상대의 허벅지를 호미처럼 걸어 당기며 허리를 잡아채자 장년 사내가 크게 무너졌다. 그리고는 젊은이가 사내의 사타구니 쪽으로 떨어졌다. 환호성과 아쉬운 한숨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붕알이 터졌나 보다!”

넘어지며 젊은이의 무릎에 채였는지 일어선 장년 사내가 겅중겅중 뛰며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볼장 다 본 중늙은이 붕알이 터졌으니 망정이지, 저 젊은 장사가 그랬으면 신세 조질 뻔 했네.”

진 편에 서 있던 구경꾼들이 겅중겅중 뛰는 사내 꼴을 재미있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한 마디씩들 거들었다.

“늙은이 부랄은 부랄도 아니라더냐? 늙은이 거는 늙은이 거 대로 다 써먹을 데가 있는 법이여!”

“그래도 늙은 네 것 터지는 게 낫지, 씨도 안 받은 저 젊은가 터져 봐. 씨도 못 뿌리고 집안 쑥대밭 되는 거지. 안 그래유?”

“맞소! 맞소!”

오만상을 찡그리며 아파하는 사내를 보며 구경꾼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한동안 왁자지껄하던 주막집도 밤이 이슥해지자 고요함에 잦아들고 하늘재 쪽에서 소쩍이 소리만 피를 토하듯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형님, 전 밤중에 우는 저 놈에 소리가 제일 듣기 싫구먼요.”

오슬이가 잠이 오지 않는지 옆에 누운 봉화수에게 말을 걸었다.

“소쩍이 소리를 듣고 춤추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놈은 미친놈이지 성한 놈이더냐? 내일은 하늘재를 넘어야 하니까 그만 자거라.”

봉화수가 오슬이를 달래며 잠을 청했다.

밤새 울어댈 요량인지 애절한 소쩍새 소리는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크게 문살을 뚫고 방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수천 년을 넘어 다녔을 고개, 고향에 살 수 없어 떠도는 유랑민이 지친 몸을 끌고 넘나들던 고단한 고개, 마소를 끌고 넘었을 객상들이나 어깨가 빠지도록 등짐을 지고 넘나들었을 보부상들의 눈물과 서러움이 서리서리 얽혀있는 하늘재, 그곳에는 밭벼처럼 억센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있어 소쩍이 울음소리조차 더 섧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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