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미륵리는 하늘재 바로 밑에 있는 마을로 지릅재를 넘으면 안보가 나오고 송계계곡 쪽으로 닷돈재를 넘으면 한수와 청풍으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안보를 거쳐 충주나 황강으로 가는 길손이 대부분이었다. 미륵리는 월악산과 대미산 사이에 묻힌 워낙 깊은 산중이고 민초들이 넘나드는 고개이다 보니 양반들이 넘나드는 새재와는 다르게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몇 해 전만 하더러도 주막집이 없어 날이 저문 길손들이나 장사꾼들은 염치불구하고 아무 민가나 찾아들어 하룻밤을 부탁하던 그런 퇴락한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손을 타지 않은 사람들 인심은 후해 있는 것은 뭐라도 내와 자기 집을 찾은 길손들을 대접하려고 했다. 그것이 고마워 보부상들이 덤으로 소금 한 사발을 퍼주기라도 하면 주인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봇짐장수들도 많이 늘어났고 이들이 까다로운 관헌들이 트집을 잡는 새재보다는 멀더라도 감시가 없는 하늘재를 이용하게 되자 미륵리에도 왕래객이 늘어나고 주막집도 생겨났다. 사람들의 통행이 늘어나 손을 많이 타게 되자 미륵리도 친척 대하듯 길손을 맞던 예전 인심이 아니었다.

“어디서 오는 객들이시오?”

봉화수 일행이 주막집으로 찾아들자 주인이 덤덤하게 맞아 들였다.

이 주막만 해도 처음에는 평범한 여느 농가였던 집이 하나둘 봇짐장수들이 늘어나면서 농사를 전폐하고 전문 주막집으로 나선 곳이었다. 이렇게 깊은 산중의 미륵리가 주막거리로 바뀐 것은 살기 힘들어진 시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벌써 삼 년째 쌍으로 찾아오는 수해와 가뭄으로 농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는데도 관아에서 물리는 세금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만 갔다. 얼마나 주리를 틀며 사람들을 볶아대는지 빚을 내서라도 세금은 갚아야 했다. 그러니 갖은 명목을 붙여 뜯기기만 하는 농삿일보다 주막집이 짭잘했다. 한 해 농사를 지어놓으면 낱알까지 헤아려 세금을 매기는 농삿일보다는 얼마를 어떻게 버는지 모르는 주막집 술장사가 상책이었다. 주막집은 물건을 맡아주는 보관비나 잠자는 방값은 없었으나 봇짐장사들이 먹는 음식값과 술값만 받아도 농삿일보다는 백 번 천 번 나았다.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는 농투산이보다는 주막집을 하는 것이 돈도 벌고 먹고 사는 데는 그만이었다. 그러자 봇짐장사들이 다니는 길목 곳곳에는 주막이 늘어났다.

어둠이 밀려들자 미륵리 안말 주막집에도 안보나 황강으로 빠지기 전에 하룻밤을 묵어가려는 사람들로 제법 북적이며 저마다 떠들어대는 통에 왁자해졌다.

“주인장, 요새 영남에서 넘어오는 물산들 주종이 뭡니까?”

저녁 요기 때가 지나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 봉화수가 주막집 바깥주인을 불러 경상도에서 넘어오는 물산들에 대해 물었다.

“영남이야 벌이 너르니 미곡이 많지요.”

주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나가는 소리처럼 답했다.

“미곡을 지고 넘어와 주로 뭐와 바꿔갑디까?”

“그야 이쪽에는 월악산에서 나는 약초가 이름났으니 주로 그걸 바꿔가고, 충주까지 갔던 장사꾼들은 한양에서 내려온 물건들도 많이 바꿔갑디다.”

“물량은 많습디까?”

“거기라고 내리 몇 년째 흉년인데 별 수 있겠소만, 작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이더이다.”

“일반 백성들이야 그렇겠지만 양반집이나 부잣집 물산들은 객주들을 통해 넘어올 게 아닙니까?”

“그들이 벌써 곡간문을 열겠수? 불쌍한 백성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고리의 장리쌀을 빌리러 올 때까지 쇳대를 틀어쥐고 기다릴 테지.”

“미곡 말고 다른 물산들을 없습디까?”

“문경에서 자기와 한지가 많이 넘어옵디다.”

“그래, 그 물건들은 주로 어디로 넘어가던가요?”

“도자기나 한지 같은 물건은 주로 황강이나 충주, 목계를 통해 한양으로 가겠지유.”

“황강이나 목계 객주들은 요사이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까?”

봉화수가 그들의 동태를 살펴보기 위해 넌지시 물었다.

“겨우내 눈에 고갯길이 막혔었는데 이 산중에 그들이 뭘 하러 오겠소? 이제 재도 뚫렸으니 물산들 거래가 많아지면 들어들 오겠지요. 헌데 젊은 양반은 뭘 하는 사람인데 그리 꼬치꼬치 묻기만 한다우?”

주막집 주인이 또박또박 대답을 하다가 아무래도 이상한 마음이 들었는지 봉화수를 유심히 살피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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