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누드: 미술작품에는 벗은 여자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2) 남성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여성의 목욕하는 모습
목욕장면 주요 소재인 대표작 ‘수잔나와 장로들’, ‘밧세바’
‘수잔나…’, 구약 외경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이야기 소재
가림막 양쪽에서 노인들이 그녀의 모습을 음험하게 염탐
‘밧세바’, 유혹에 이기지 못한 다윗의 회개가 중요 메시지
남성들의 엿보고자 하는 관음적 시선 사회적 용인 역할

틴토레토 ‘수잔나와 장로들’ 1555년(왼쪽), 장-레옹 제롬 ‘밧세바’ 1889년경.
틴토레토 ‘수잔나와 장로들’ 1555년(왼쪽), 장-레옹 제롬 ‘밧세바’ 1889년경.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잠시 투명인간이 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평소에 금지되었던 어떤 행위를 해 보고자 할 것 같다. 구체적으로 조사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재미삼아 추정해보자면, 남성들의 경우에는 높은 확률로 여성목욕탕에 가보고 싶다고 말할 것만 같다. 미술의 역사상 남성 화가들이 갖가지 다양한 명분을 가지고 여성의 목욕하는 장면을 그리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러한 추정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기록한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소개되고 있는 유명한 화가 제욱시스 역시, 트로이 목마 이야기에 등장하는 헬레네를 목욕하는 장면으로 그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욱시스는 헬레네의 목욕 장면을 그리기 위해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다섯 명의 소녀를 선발하여, 그들의 나신(裸身)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취하고 합성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잘 알려진 바대로 트로이 전쟁은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의 거취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으로, 이 영웅담의 가장 클라이막스 부분은 단연 거대한 목마 속에서 병사들이 우루루 쏟아져나오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위대한 화가 제욱시스는 굳이 헬레네의 목욕하는 장면을 그리고자 아름다운 소녀들을 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서구의 신화나 영웅설화 속에서 목욕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여인들은 이 밖에도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성경 속 이야기들은 어떨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누드로 그려지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될 것이다. 신이 두 남녀를 창조하는 모습이나, 선악과에 유혹당하는 장면, 그리고 금기를 어긴 이후 자신들의 벌거벗음에 수치심을 느끼고 나뭇잎과 손으로 몸을 가리는 장면 등은 신체의 아름다움 여부와 관계없이 초기 기독교시대부터 종종 그려져 왔다. 하지만 ‘옷을 입지 않음’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면, 앞서 언급한 트로이 목마 이야기 속 헬레네의 목욕장면처럼, 성경의 이야기들 가운데 중요한 대목이 아니거나 주된 메시지와 별 상관이 없는 여성의 목욕장면들이 너무도 많다.

이러한 장면들은 대체로 성경의 구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는데, 구약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는 많은 인물들의 생애를 전한다. 많은 경우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나 의도치 않게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게 된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의 결론은 어떤 경우에도 신심을 잃지 말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가운데 목욕장면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재는 ‘수잔나와 두 장로 이야기’,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 등이다.

16세기의 화가 틴토레토(Tintoretto)가 그린 ‘수잔나와 장로들’은 구약 외경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다니엘서 13장에 전하는 수잔나는 부유하고 명망있는 요아힘과 결혼한 여성이다. 평범하고 풍족하게 살아가던 수잔나는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시련을 겪게 되는데, 그녀의 남편을 방문했던 두 늙은 장로가 목욕하는 그녀를 발견하고 성폭행을 하려다 발각된 것이다. 수잔나는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었고, 매우 더운 날이었기 때문에 시종들을 물리치고 홀로 목욕을 하려다 두 노인으로부터 급습을 당했다. 두 노인은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응하지 않으면 수잔나가 젊은 남성과 간음을 했노라 소문내겠다고 협박을 했지만, 수잔나는 크게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 상황을 모면했다. 아니나 다를까, 성폭행 미수에 그친 두 늙은 남성은 수잔나가 나무 아래서 젊은 남성과 간음을 저질렀다고 소문을 퍼뜨려 결국 법정에 그녀를 세웠다. 그녀는 억울하게도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신앙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억울함을 하느님에게 간절히 호소했는데, 이에 대한 응답으로 성령을 받은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두 노인을 다시 취조하여 수잔나의 무죄를 확증받았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수잔나는 누명을 벗었고, 두 노인은 반대로 사형에 처해졌다.

성경에서 전하고자 하는 수잔나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 신앙이 응답을 받는다는 것과 부정의는 벌을 받게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미술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잔나는 거의 예외  이 목욕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틴토레토의 ‘수잔나와 장로들’에는 각종 장신구와 화려한 옷을 벗어놓고 물에 한쪽 다리를 담근 채 거울을 바라보는 벌거벗은 수잔나가 등장한다. 수잔나의 백옥 같은 신체과 나머지 어두운 배경이 대조를 이루며 그녀의 몸은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거울을 세워 놓은 장미덩쿨 가림막의 양쪽에서 노인들이 음험하게 그녀의 모습을 염탐하고 있다.

이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는 좀 어렵다. 수잔나는 지금 무방비 상태로 화려한 장신구를 내려놓고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고, 가까이 다가온 위협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노인들이 눈에 띄는 자세로 그녀를 훔쳐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수잔나의 신앙심과 다니엘의 지혜가 핵심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어쩐지 수잔나의 부주의가 문제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구도인 것이다. 수잔나의 목욕이 노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 근본 원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목욕’이 문제가 되는 이야기는 또 하나 있다. 구약의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밧세바가 그 주인공이다. 밧세바는 우리야라는 장군의 부인이었는데, 어느날 목욕을 하는 밧세바의 모습을 훔쳐 본 다윗왕이 음심을 품고 유부녀인 그녀를 불러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밧세바는 다윗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밧세바의 남편이 밧세바와 자신의 관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왕은 위험한 전쟁터로 그를 보내어 결국 죽게 만든다. 남편의 죽음 이후 다윗왕과 결혼하게 된 밧세바는 다윗의 아이를 낳게 되는데, 두 사람에 대한 벌로 아이는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처절하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 이후 다윗왕은 밧세바와의 사이에 두 번째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이스라엘의 3대 왕이 된 솔로몬이다.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 장-레옹 제롬(Jean-Leon Gerome)의 그림 ‘밧세바’에는 파란 하늘 아래 옥상에서 고혹적인 자세로 목욕을 하는 밧세바와, 왼쪽 높은 건물의 테라스에서 기둥을 부여잡고 그 모습을 훔쳐보는 다윗왕이 보인다. 목욕하는 밧세바는 뒷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몸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는지, 몸을 씻고 있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일부러 포즈를 잡은 무용수 같은 느낌이다. 한 다리에 체중을 실어 몸을 휘어지게 만들어 허리의 곡선이 더 두드러져 보이고, 햇살을 받아 부분적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밧세바의 몸은 일부러 보라는 듯이, 혹은 누가 보고 있는 것을 안다는 듯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밧세바와 다윗의 이야기는 밧세바의 ‘목욕’보다는 유혹에 이기지 못한 다윗의 회개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세라,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밧세바의 모습은 예외 없이 목욕하는 장면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목욕 장면들은 남성 관객들로 하여금 여성의 목욕 장면을 엿보고자 하는 관음적인 시선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림 속 목욕하는 여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포즈를 취하고, 미리 잘 계획된 표정을 연출한다. 그림 속 남성들은 다윗왕이건 노인들이건 중요치 않다. 목욕하는 그녀들을 감상할 사람들은 현실의 남성 관객들이기 때문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