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활쏘기는 순도 100% 우리의 전통 문화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명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나라의 역사와 특별히 다른 점입니다.

구석기 말기에 발견되는 전국의 유적을 보면 돌화살촉이 가장 많이 발견됩니다. 그때부터 써온 사냥용을 전쟁용으로 바꾼 고대 국가 초기에 활쏘기는 눈에 띄게 발전합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활을 바탕으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활로 나라를 세우는 왕조가 둘입니다. 고구려와 조선이죠. 고구려는 잘 아시다시피 부여에 살던 주몽이 형제들의 핍박을 피해 압록강 가로 피난을 오면서 생긴 나라입니다. 그때 주몽에게 가장 큰 권위를 부여했던 것이 바로 활입니다. 부여 군사에게 쫓기던 주몽이 강물을 활로 치자 자라와 물고기가 올라와 다리를 놔주었다는 것이고, 압록강 가로 온 뒤에도 송양과 활쏘기로 내기를 하여 나라를 차지합니다.(‘우리 활 이야기’)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명궁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고려 말의 왜구는 나라를 위협할 만한 존재였는데, 이들을 활쏘기로 진압하면서 점차 권력을 차지하게 되고, 마침내 새로운 왕조를 열게 됩니다.

태조 이성계는 정말 활을 잘 쏜 듯합니다. 혹시 왕이라서 후대에 사관들이 추켜세우지 않았을까 하고 저도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는데, 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고쳤습니다. 아무리 사관이라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예컨대, 고려 말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의 일입니다. 나하추의 적장 하나가 목 두르개와 입마개는 물론 얼굴 가리개까지 써서 활을 아무리 쏘아도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때 태조가 말을 쏘아 맞추니까 말이 깜짝 놀라서 날뛰자 그 말을 제어하느라고 고삐를 당기며 입을 벌린 모양입니다. 그 입 속으로 화살을 쏘아 넣어서 적장을 죽인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정말 많이 기록되었습니다. 거짓이라고 믿기에는 정황이 또렷해서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태조는 정말 활을 잘 쏜, 전무후무한 명궁이었던 듯합니다. 조선의 비밀 병기 편전(애기살)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성계의 오녀산성 공격 때 일입니다.

이 태조가 이렇게 활로 나라를 이루었기에 그 후손들인 왕족들도 대부분 활에 대단한 애착을 보였습니다. 세도도 정조도 활을 잘 쏘았고, 고종도 구한말의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활쏘기로 번잡한 마음을 달랬습니다.(‘활쏘기 왜 하는가’)

게다가 조선시대의 과거를 통해서 입신양명을 하는데, 무과의 주요 과목이 활쏘기였기 때문에 활쏘기는 등과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특히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 주안점을 둔 우리나라의 전쟁사에서 활쏘기는 특히 중요한 과목이었습니다. 역사서 몇 장만 들추면 활 이야기가 나옵니다.

활은 생활 속에 생생하게 살아서 우리의 디엔에이까지 침투한 전통 문화입니다. 어려서 들판에서 활쏘기 한 번 안 하고 자란 사람은 없다는 점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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