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니얄람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니얄람
  • 충청매일
  • 승인 2005.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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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기 교수의 티베트 기행 ⑫
   
 
  ▲ 해발 5천200m의 라룽라 고개. 탈쵸와 룽다로 장식한 고개 표시 구조물 아래로 인근마을 주민이 우마차를 몰고 지나간다.  
 

초모랑마와 초오유봉이 오늘 아침엔 제 모습을 드러낼까 하는 기대로 잠을 설치고 먼동이 트는 기미에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와 옥상으로 오른다. 누가 깨운 것 같지도 않은데 여행객 몇명이 여기저기서 옥상으로 올라온다. 옆의 초원엔 새벽을 깨운 유목민 천막에서 실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러나 예의 두 봉우리를 덮고 있는 구름은 움직일 줄을 모른다. 티베트는 정말 칭찬할 것이 너무 많은데 8월의 날씨만큼은 필자에게 가끔 무모한 확신을 갖게 한다.

정선생이 촬영을 포기하고 아침식사를 재촉한다. 굶을 요량으로 정선생을 먼저 보내고 초모랑마를 덮고 있는 구름에 눈을 박고 버텨본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쳐야 미치는 법이라고 평소 주장하는 대로 혼자 옥상을 서성거려 보지만 끝내 산맥을 싸고도는 구름은, 싸리 울타리 터진 사이로 개코 내밀듯 잠깐 한번 흐릿하게 내보이더니 이내 눈 씻을 새가 없이 눈 씻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허정한 마음으로 지프차에 올라 라룽라(lalung-la)고개를 향한다.

큰물을 끼고 초원도 지나며 막상 오늘이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짧은 기간이지만 긴 세월을 겪은 듯 생각의 동선(動線)은 길게 늘어진다. 푸른 하늘에 가슴 설레고 설산에 흥분하고 들꽃에 미소짓기도 한 티베트 여행은 한마디로 꿈의 시간이었다.

큰산을 한번 휘돌아 달리니 히말라야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라는 해발 5천200m의 라룽라 고개가 눈앞이다. 멀리 고개 뒤로 대륙에 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쭉 뻗고 누운 히말라야가 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연봉들도 구름 속에 가려 있지만 가끔 터지는 사이로 그 위용 전모를 다 가리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외길이 쭉 뻗은 한쪽엔 점점으로 보이는 양떼가 이동을 한다.

단숨에 달려 탈쵸와 룽다로 구조물을 만들어 세운 고개에 다다른다. 우선 장사장이 햇반과 라면으로 점심 준비를 하고 정선생과 필자는 사방을 둘러보며 촬영을 한다. 8천m급 히말라야의 막내벌인 시샤팡마(8천12m)가 고개 우측에서 보일락 말락하고 그 앞 공제선으로 양떼가 그림같이 노닌다.

정면으론 무명의 고봉들이 구름과 승강이를 한다. 생각 같아서는 일정과 관계없이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14대 달라이라마가 게일런 로웰이라는 사진가와의 대화에서 ‘우리의 지구는 우리의 집입니다. 우리자신, 우리아이, 우리친구, 기타 우리와 함께 이 위대한 집에 사는 모든 지각있는 존재에 대해 행복감을 느끼려면 우리는 이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보살펴야 합니다’라고 한 말을 세계인들은 귀담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이곳에 서니 더욱 절실해 진다.

아쉬움을 남기고 라룽라 고갯길을 내려가니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의 니얄람(nyalam)이란 마을이 나온다. 티베트의 마지막 마을이다. 니얄람을 출발해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계곡길로 접어드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오기 시작한다. 이제까지의 민둥산과는 달리 길옆으로는 높고 큰 수목이 우거지고 그 푸르름이 딴 세상에 온 것 같다. 빗줄기는 거세어 경사 깊은 내리막길 좌우 수목 우거진 고산준령 사이로 운무가 차 올라 또 다른 진풍경을 연출한다. 국경도시 장무(樟木)까지 가는 빗속의 풍경은 그런대로 흥미로웠다.

가파른 비탈길 따라 형성된 장무는 한족, 티베트인, 네팔 사람들에다 여행객들까지 뒤섞여 활발해 보이는 도시다.

장무 호텔에 짐을 풀기 무섭게 양길수군과 양기사는 되짚어 라사로 출발한다. 호텔은 비교적 깨끗하고 무엇보다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좋았다.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좀 괜찮은 저녁과 자리를 몇차례 옮겨가며 술을 마신다. 약 일주일, 네팔에서의 일정도 있지만 국경도시에서의 객창감을 잠재워야 되겠다는 생각도 했고 한마디로 야생 티베트여행의 이모저모가 새롭게 다가와 곁들여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땅도 넓고 하늘도 넓은 티베트, 고원이 있고, 호수가 있고, 강이 있고, 그리고 설산고봉이 즐비해 서기 천년의 풍광을 고이 간직한 티베트를 시각적으로 보존하고픈 욕망에 있는 힘껏 부산을 떨었지만 뜻같이 됐는지도 의문이다. 혹시 호젓한 여행이 아니라 카메라에 끌려 다니는 여행이 아니었는지도 되짚어 보게 된다.

다음날 아침, 어제와 달리 맑은 날씨 속에 대절한 지프차로 카트만두에 도착한다. 한국인 부부가 경영하는 민박 ‘우리집’에 투숙, 네팔일정을 시작한다.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포카라까지 이동, 사랑코지까지 걸어 올라가 다울라기리봉과 안나푸르나연봉, 그리고 네팔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마차푸차레는 물론이고 일기가 좋아 람중히말까지 촬영을 한다.

일주일간의 네팔 일정을 마치고 사람들로 붐비고 넘치는 홍콩을 거쳐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안에서, 만약 인간에서 좌천돼 동물이 된다면 티베트에서 살고 싶다고, 그래서 시간을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이해하는 생활을 하겠노라는 한낱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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