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제 곧 질골에도 한양 경상들이 득실거릴 걸세. 이제 곧 장 담글 때가 되면 한양에서 엄청난 항아리들이 필요할 테니 가마마다 며칠이고 불이 끊이지 않을 거구먼.”

황 객주의 말을 들으며 봉화수는 장사는 눈앞에 보이는 물건만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절기도 알아야 하고 다른 고장의 사정도 환하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배우고 있었다.

“황 객주님, 질골 항아리는 누가 도거리를 하지요?”

“대행수께선 양평 금 객주를 시켜 도거리를 맡기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황강 송만중이가 했는데, 그놈이 그냥 포기를 하고 말런지 모르겠구먼. ”

“그러게 말입니다.”

“질골 항아리만 해도 꽤 많은 돈이 흐를텐데 단단하게 잡도리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인데 어쩌실라나.”

“행수 어르신께서 손을 쓰시겠지요.”

“이 사람아, 세상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거여. 자네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면 골 아플 일도 없지.”

그러나 황 객주처럼 봉화수 속내가 간단치 않았다. 최풍원 대행수의 말처럼 송만중이를 구슬렸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북진여각의 최고 수장인 대행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 여각의 일개 차인꾼에 불과한 봉화수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송 객주가 당하고만 있을까요?”

봉화수는 황강객주 송만중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자네가 아니었더라도 그놈은 누구에게라도 한 번은 당해야 할 놈이었구먼. 우리 같은 장사치들이 서로 돕지 않으면 양반네들이 우리를 도와줄 텐가 아니면 타관 객주들이 우리를 먹여 살릴텐가. 죽든 살든 우리끼리 도우며 살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어. 사람들이 나를 보고 살살이라고 하는 것도 다 알지만, 그래도 난 우리 패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지. 송 객주 놈은 눈깔에 돈만 뵈면 지 애비 에미도 팔아먹을 놈이여. 그런 놈은 진즉 이 시퍼런 강물에다 모가지를 거꾸로 처박아버렸어야 해!”

황 객주가 두 손으로 모가지 비트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왠지 닭 모가지 비틀 듯 그렇게 비틀어서 끝날 일이 아닌 듯싶었다. 평생을 장마당에서 잔뼈가 굵고 온갖 풍파에 시달리며 살아온 송만중이었다 어제는 엉겁결에 당했지만 그대로 황강의 상권을 포기하고 말 송만중이 아니었다. 설령 목숨줄을 끊어놓는다 해도 원귀가 되어 꿈자리까지 찾아올 질긴 위인이었다. 보복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봉화수가 염려하는 것은 난장을 트는 데 송만중이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제 일이 마음에 걸렸다. 봉화수는 왠지 자꾸만 밀려드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동몽회 서리 오슬이가 곁에 있기는 했지만, 녀석이야 장마당을 쏘다니며 기별이나 전할 뿐 장사 일머리를 상의할 상대는 아니었다.

한양의 동대문 밖까지 소문이 난 옹기를 만드는 질골을 지나자 호운리에서 내려오는 삼탄과 합쳐진 합수머리가 나타났다. 구름에 앉은 듯 잠잠하게 흐르던 거룻배가 삼탄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수되는 용초 여울에 다다르자 뱃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심하게 요동 쳤다. 겨우 용초 여울을 빠져 나오자 이번에는 으시사 여울목이 나타나며 물길이 빨라졌다. 앞뒤 사공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왕제를 올리던 으시사 여울목은 남한강의 수많은 여울 중에서도 뱃꾼들이 무서워하는 험악한 물살 중의 한 곳이었다. 배가 으시사 여울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으시사 여울은 휘돌아치는 물살에 소금배나 뗏목들이 맥도 추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 뱃꾼들 사이에서는 과부소로 악명이 높았다.

“모두들 앉으시오! 냉큼 앉으시란 말씀이야!”

도사공이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급하게 흐르는 물살이 높게 파도를 만들며 쏟아져 들어와 배 안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금세 배 안이 난리통으로 변했다. 한 머리는 놀란 우마를 진정시키느라 코뚜레를 움켜잡고, 또 한 머리는 바가지로 배 안에 들어온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 이놈아! 눈깔을 어디다 두고 있는겨!”

도사공이 조사공에게 호통을 쳤다. 아직 물길에 서툰 조사공은 성난 물길에 놀라 노를 놓친 채 허둥대며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이놈아! 사주밥을 처먹더라도 염치가 있어야지. 아직 까칠복숭거 같은 새끼들 놔두고 뒤지려고 그러는 겨!”

도사공이 또 다시 조사공에게 호통을 쳤다.

여울목 물살이 얼마나 세차게 휘돌아치는지 뱃전을 움켜쥐고 뱃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도사공은 군데군데 튀어나온 여울의 바위를 피해 뱃전에 서서 삿대를 좌우로 번개같이 놀리며 물골을 따라 뱃길을 잡느라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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