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런데 그게 과수들만 누르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게여. 양기로 음기를 눌러 남자가 득세하기 위한 거라나 뭐라나, 인젠 들어도 자꾸만 까막까막해져서…….”

“도사공은 아는 것도 많소!”

“웬걸입쇼. 이렇게 강바닥을 뜯어먹으며 평생을 보냈으니 다 귓동냥으로 얻어들은 것 뿐입죠.”

황 객주의 추킴에 늙은 도사공이 계면쩍어 했다.

“하기야 지집들 설쳐대는 꼴 보는 건 볼썽 사납지!”

“지집은 어리숙한 게 최고입죠!”

도사공과 황 객주가 짝짜꿍이 되어 떠들어댔다.

“이봐 화수! 저기 황두리는 황돌무라 해서 임금님께 진상을 하는 일품 무수가 나는 곳이여. 무수가 나는 때만 되면 한양의 경상들이 줄나래비를 서지. 그리고 황뜰 북쪽으로 고개 너머 대덕산 골짜기에 황골이 있는데 거기는 꿀이 무진장으로 나는 꿀골이여. 황두리는 무수와 꿀이 특산물이지.”

뱃전에 서서 주변경관을 구경하던 봉화수에게 황 객주가 황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황두리가 점점 안개 속으로 멀어져 갔다. 사라져 가는 황두리를 뒤로 하며 방흥을 빠르게 지난 배가 양평 뒷들나루를 내려가다 참나무골을 감싸돌며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급하게 틀었다. 참나무골은 남한강 중에서도 물목이 좋아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마을인데 그중에서도 귀하고 소문이 난 것은 황소 한 마리하고도 바꾸지 않는다는 금린어가 유명했다. 참나무골을 돌면 곧바로 질골이었다.

“저기 질골은 항아리가 많이 나는 곳이여. 항아리는 모양세만 봐도 산지가 어딘지 알 수가 있지. 함경도나 평안도 항아리는 모가지부터 배가 불룩해서 아홉 달 된 뒤뚱거리는 만삭 같고, 경기도·충청도는 볼록한 배가 다섯 달쯤 된 애 가진 년 같고, 저 아랫녘 경상도나 전라도 항아리는 날씬하게 쭈욱 빠진 것이 시집 안 간 언년이 몸매 같구먼.”

황 객주가 강가를 따라 골짜기마다 보이는 마을들을 짚어가며 봉화수에게 그곳에서 나는 산물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객주님, 그게 무슨 이유가 있는가요?”

고장마다 항아리 모양이 다르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황객주 말에 의아해진 봉화수가 물었다.

“볕 탓이지. 장이 맛있게 잘 익으려면 적당하게 볕을 쪼여야 허는 데 남쪽에는 햇볕이 드는 날이 많고, 북쪽에는 햇볕 구경하는 날이 적으니까 거기에 맞춰 적당하게 항아리를 만든 거라는구먼. 북쪽에서는 항아리 배가 불러야 모자라는 햇볕을 충분하게 받을 것이고, 햇볕이 뜨거운 남쪽에서는 아무래도 배가 날씬해야 넘치는 볕을 줄일 게 아니겠는가?”

“옛날 어르신들은 어떻게 그런 이치를 알았을까요?”

봉화수는 항아리 하나에까지도 볕을 이용하는 옛 어른들의 지혜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이 지금보다도 더 똑똑했다는 거여.”

“그러문입죠. 요새 놈들 지들이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예전 사람들 똥구멍도 못 따라가지. 아암, 그렇구 말구!”

노를 잡은 손에 땀이 나는지 연신 손바닥을 잠뱅이에 닦던 도사공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질골에서는 언제부터 항아리를 굽기 시작했는가요?”

“베론인가 뭐신가 거기서 일어난 교난 때니까 반백년은 족히 넘었을거구먼.”

“아마 그리 되었을거구먼. 저 질골에는 그때 도망쳐 온 천주쟁이들이 많이 살고 있습죠. 천주쟁이들은 조상님 제사도 모시지 않는다는구먼유. 천지 분간을 못하는 놈들이지. 제놈들이 누구 땜에 세상에 꼭지를 달고 나왔는데 조상을 굶겨! 천벌을 받지. 그래도 항아리 하나만은 잘 만든디야.”

도사공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더니 황 객주와 봉화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존대와 평어를 섞어 썼다.

“어허! 세상이 어찌 될라고 그러는지, 지집만 문제가 아니라 불상놈도 문제여!”

한 배를 타고 북진나루를 떠나온 지 한 식경쯤 지나자 낯이 좀 익었다고 생각했는지 도사공이 얼쩡얼쩡 말을 놓으며 사람들 이야기에 끼어드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뱃사람들은 마을에서 서당 다니는 학동을 만나도 코가 땅바닥에 닿도록 절을 해야 했다. 길을 동행해도 뒤처져 걷거나 주막에서 탁배기를 한 잔 해도 자리를 따로 하는 땅바닥 신세가 뱃놈들이었다. 도사공이라고 해도 그런 천민인 뱃놈이 어물쩡하게 맘먹으려고 하자 황 객주는 그것이 잔뜩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하대를 받는 천덕꾸러기 천민이 뱃꾼 신세였다. 그런 뱃놈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참견을 하려고하자 들은 척도 않은 채 무시를 하며 황 객주가 봉화수만 쳐다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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