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정보원 원장

[충청매일]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의 신작 영화 ‘나랏말싸미’가 한글 창제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기대를 모았으나 역사 왜곡과 세종대왕 폄훼 논란 등에 휩싸이며 95만(‘19년 8월) 관객 수로 흥행에 그쳤다. 조철현 감독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라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오직 백성을 생각하며 한글을 창제하고자 했던 세종의 진심 어린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 창제의 의미가 부각되지 못한 채 관객에게 외면을 받았다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로 가장 혜택을 받는 계층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가의 여인과 궁녀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세종의 한글 창제의 의미를 되새겨 오늘날을 보면 여전히 한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존재한다.

정보습득의 문제뿐 아니라 한글 사용에도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제1회 정부혁신전략회의에서 “일반 국민이 법령과 행정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이야말로 국민을 위한 행정의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라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행정용어 사용을 강조한 바 있다. 2018년 정부부처 보도자료 국어기본법을 위반한 현황 조사표(한국문화연대, 2018.10.)에 따르면 보도자료 하나당 한글전용 위반은 약 2.4회, 외국어 남용은 약 6.6회로 나타났다. 또한, 기획재정부가 한글전용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가장 많았으며, 외국어를 가장 많이 남용한 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로 조사됐다. 민간부문의 한글 사용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퍼져있는 ‘한남충’, ‘맘충’, ‘개저씨’ 등 혐오 신조어, ‘노잼’(영어 ‘No’와 ‘재미없음’을 줄임말). ‘핵인싸’(크다의 ‘핵’과 영어 ‘insider’의 합성어) 등 줄임말과 외래어 혼용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의 말과 글이 지닌 의미가 퇴색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나서 국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올해 9월을 목표로 청주에서 초정행궁 조성이 된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뜻을 펴고 싶어도 아직 배움이 없어 그리하지 못하는 어린 백성, 즉 ‘우민(愚民)’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한 세종은 반대파 등의 눈을 피해 청주의 초정(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 머물며 훈민정음 반포 전 막바지 연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이 뜻한 한글 창제의 마지막 순간을 간직한 초정행궁 조성은 단순히 과거의 행궁을 재현하는데 목표로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시대 유교 사대부가 집권하던 시기에 백성에게 알기 쉬운 문자를 널리 알리고자 했던 세종의 마음과 초정 행궁에 담긴 세종의 한글 창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이면서 한글을 누구나 읽고, 향유하며,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외래어로 퇴색한 한글 본연의 모습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이루고자 한 ‘지식의 독점’을 막고, ‘지식의 대중화’를 통해 오늘날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문맹률을 이루게 한 아름다운 한글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듯 이번에 조성될 초정 행궁 또한 세종이 이루고자 했던 훈민정음의 뜻을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