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충청매일]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15세기 이후 유럽·북아메리카·북아프리카 일대에서 행해졌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현대판 마녀사냥이 시작되고 있다. 각종 언론은 물론 네티즌에서는 세상에 드문 악녀 고유정과 그녀가 선임한 남윤국 변호사 뿐만 아니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관한 비판 여론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전 남편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계획적인 범행과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 남편의 어린 아이까지 항거불능 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은 악녀와 악질 계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국가가 아닌 봉건체제에서는 당장 물고(物故)를 냈을 사건이다. 시대가 변해 삼종지덕(三從之德)과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아니지만 남편 알기를 개차반 만큼도 여기지 않을 정도로 핍박을 받았던 것도 아닌데 이 여자에게는 부덕(婦德)이란 태생부터 없었던 것 같다.

살인마임에도 반성을 하기는 커녕 집안의 경제력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무죄나 감형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자(死者)의 모욕을 서슴치 않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더군다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악녀들은 왕실이나 귀족층이 대부분이어서 자신들은 명령만 하고 실제 행동에 옮긴 것은 수하들이었지만 고유정은 스스로 살인을 하다못해 더 이상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능지처참(陵遲處斬)보다도 악랄하게 범행을 자행(自行)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데 법치국가에서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법적으로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선임된 변호사는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도록 당연히 변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상식 이하의 거짓이나 달콤한 말로 왜곡이 되면 변호인도 범죄자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변호라면 감형을 목적으로 범행을 왜곡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게 하는 것보다 범죄자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깨우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참된 변호라고 생각된다. 처음부터 이런 자신이 없으면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으면서 까지 굳지 변호사의 사명감을 내세우지 않아도 국선 변호인이 변론을 맡도록 제도권에 따르는 것이 더욱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감형의 가능성의 거의 희박해 보이는 사건을 뭇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수임받아 시행하고자 함은 경제적 수익이나 광고의 효과를 노려보자는 얄팍한 오기(傲氣)로 볼 수 밖에 없다. 수많은 변호사중 아주 극소수의 변호사만이 남윤국이 변호하는 것에 타당함을 주장하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범죄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계획된 범죄는 경우가 어찌했던 간에 엄벌(嚴罰)에 처해져야 마땅하다. 고유정은 이제라도 깊이 반성하고 모든 사실을 밝혀 인간의 본 모습을 찾아야 하고, 변호사는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설득을 해 참회를 하고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특히 재판정에서 자극적인 변론은 모두에게 오히려 형이 과증됨을 알아야 한다. 남변호사는 고유정에게 무엇이 득이 되는 지 신중하게 판단해주길 바란다. 이 모든 과정은 온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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