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180년, 한(漢)나라 5대 황제 문제(文帝)가 즉위하였다. 문제는 한나라 창업자 유방(劉邦)의 넷째 아들이다. 하루는 신하 장석지가 문제를 수행하여 패릉을 방문했다. 패릉은 나중에 문제가 죽으면 묻힐 황제의 묘였다. 패릉을 여기저기 둘러본 뒤에 문제가 말했다.

“곽을 잘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 같구나. 이음새 없는 북방의 돌의 가져와 곽을 만들고 모시와 솜으로 그 틈을 칠하여 붙인다면 그 누구도 감히 곽을 손댈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자신의 묘가 나중에 도굴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곽을 만들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이 모두 황제의 말이 훌륭하다고 소리 높여 칭송하였다. 하지만 신하 장석지는 달랐다. 문제의 말을 경계하여 아뢰었다.

“만일 무덤 속에 사람이 욕심낼 물건이 들어있다면 아무리 견고하게 만들고 틈새를 이을지라도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덤 안에 사람이 욕심낼 물건이 없다면 그 틈이 벌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근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도굴을 염려한다면 무덤 안에 보물을 넣어두지 말라는 뜻이었다. 황제가 이 말을 듣고 미소를 지어보이며 장석지를 크게 칭찬하였다.

“그렇지! 그대 말이 옳소. 죽어서까지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겠소.”

후에 장석지는 법 집행을 책임지는 정위에 올랐다. 그런데 어느 날 도굴꾼이 한나라 태조 유방의 능묘에서 옥으로 된 반지를 훔치다가 붙잡혔다. 문제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며 장석지에게 명했다.

“그 도굴범을 용서하지 마라. 그 집안까지 모두 잡아다 멸족시켜라!”

하지만 장석지는 황제의 지침을 어기고 법률에 따라 형벌을 내렸다. 문제가 그 결과를 보고 받고는 벌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장석지가 대답했다.

“죄인은 규정된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만일 감정이 앞서 처리한다면 작은 잘못으로도 사형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법대로 처리하도록 해주십시오!”

문제가 이 말을 듣고 이치에 맞는 말이라 여겼다. 더 이상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한나라는 문제가 재임하는 시절 동안 전쟁이 없고 평온하였다. 이는 옆에 옳은 말을 하는 신하들을 많이 두었고 간신들을 멀리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신하들도 황제가 옳은 말을 알아들으니 힘을 내어 간언한 것이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동기상구(同氣相求)란 기풍이나 안목이 같은 사람을 가까이 두려 한다는 뜻이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중대한 일도 뜻이 맞는 이가 권력을 잡고, 뜻이 맞는 이가 신하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법이다. 간신들은 본래 나라가 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옳은 사람이 나타나면 자신들이 설 자리를 잃을까봐 발악을 하기 마련이다. 마치 악귀 들린 승냥이처럼 물어뜯고, 흠집 내고, 비방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낙마시키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통치자가 기풍이 곧으면, 반드시 그런 기풍을 가진 신하를 얻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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