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미원초등학교는 1919년 개교하여 금년이 100주년의 해로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10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에서는 모교발전과 동문들의 행복한 축제의 장을 열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기금모금에서부터 다양한 행사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예로부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자랑스러운 나의모교는 강과 산이 열 번이나 변했을 긴 세월동안 미원의 어린 꿈나무들을 양성하면서 온갖 풍파를 감내해온 지역의 버팀목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흔히들 ‘국적은 바꾸어도 자기가 배우고 자란 모교는 바꿀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모교의 중요성에 대한 함축적 표현으로 동문 간 서로 친목과 사랑을 도모하라는 메시지라고 본다. 모교라는 단어는 고향이나 부모님을 연상하게 하는 친숙한 언어로 언제나 따뜻하게 다가와 동심의 세계로 젖어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중 초등학교 추억은 더욱 감미롭게 느껴진다. 대부분 초등학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죽마고우들과 꿈과 낭만을 키우며 자라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베이비붐 세대로 우리나라가 경제사회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학교를 다녔고 가난과 고난의 세월을 어느 정도 경험을 했다. 지난날 보릿고개 시절을 겪었기에 요즘 세상을 한마디로 ‘우리는 잘사는 나라’라는 표현을 주위에 자주하며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 모든 일상이 즐겁고 행복하다. 모든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특히 음식 남기는 걸 금기시하며 생활하고 있어 때에 따라 핀잔도 받지만 몸에 배인 습성이라 어쩔 수 없다.

필자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생필품이 우산하고 수건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동화 같은 옛이야기라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누구나 겪었던 슬픈 현실이었다.

8남매 대가족이 한집에 살며 수건 하나로 몇 사람이 돌아가며 사용했으니 요즘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행복이란 단어가 절로 나온다. 우산도 그 시절엔 대부분 비닐우산이라 바람이 불면 찢어지기 일쑤였고 그마저도 없어 비료포대를 뒤집어쓰고 다녔다.

필자가 작고하신 어머니께 가장 죄스럽게 한 기억은 초등시절 등교시간에 집에 없는 우산을 내놓으라고 떼를 썼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 통한으로 남아있어서인지 우산은 내게 영원히 귀중한 존재다.

40년 우체국공직생활 하는 동안 충남북 이곳저곳을 다니며 근무 시 미원이라는 글귀를 보거나 들으면 뭉클하면서 힘이 솟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이는 누구나 그러하듯 모교와 고향사랑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의 나라 원조 수혜국에서 최초로 원조 공여국이된 배경엔 선조들의 눈물어린  피와 땀의 결과였고 그 내면에는 배움의 전당인 학교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세계는 보고 있다.

100년의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원초교는 그동안 어려운 환경에서 역경도 많았지만 슬기롭게 극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새로운 100년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여 미래의 주인공인 미원 꿈나무들을 나라의 훌륭한 인재로 양성해주고 지역의 영원한 버팀목으로 성장해주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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