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80세가 넘는다. 지능이 높은 생물이 100년 가까이 사는 일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먹고 자고 번식하는 단순한 순리를 넘어 인간의 생활은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왜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풍족한 음식이 있고 튼튼한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차가 있고 냉장고에 반려동물까지 있는데,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

우리의 삶은 태어나자마자 경쟁체제 속에 던져진다. 3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40평, 50평 아파트를 꿈꾸고 20평에 사는 사람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세태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주변, 아파트 평수에 따라 아이들의 등급이 정해지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 것을 보면 부의 축적이 삶의 질을 높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은 확실하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또 다른 학원으로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 아이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어떤 삶의 목표를 가지고 공부할까.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봐도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학생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부모들은 나의 아이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란다. 의사가 되거나 판사, 변호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이의 희망인지, 부모의 희망인지 알 수 없이 공부를 잘하면 의사, 판사, 변호사의 길을 간다.

중3인 아들은 예고를 목표로 학교에 다닌다. 중2 때부터 진로를 정했고 그 길을 가고자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피리 전공을 선택하고부터 자신에게 목표가 생겼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왜 학교에 다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대견한 말을 하는 아들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이 드나 아들이 바람대로 진학을 하고 피리 연주자가 되었다 하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란 보장은 없다. 예술가의 길은 여전히 평탄치 않다. 특히, 자본을 최고로 삼는 이 땅에선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날아드는 고지서와 높아만 가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우리의 부모들은 열심히 살아간다. 힘든 일상 속에 자신의 꿈은 사라지고 삶의 목표가 자식이 성공하는 것에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돈이 많은 이는 좋은 차를 사거나 고급 취미를 가지거나 명예를 가지기 위해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행복의 기준이 되는가. 가치관에 따라 대답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걸어온 이 숨 막히는 세상을 우리의 아이에게 물려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잘살고 있는가. 나의 꿈은 중학교 때는 육상선수였고 고등학교 이후는 시인이었다. 육상 선수의 꿈은 사라졌지만, 시인의 삶은 이뤘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아파트에 승용차도 있다. 아내는 아내대로의 삶을 살고 있고 아들은 아들의 목표가 있다. 그런데 나는 누구일까.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 그리고 사무국장에 시인이란 호칭을 받고 있지만, 정작 나는 뭐하며 사는지 모를 때가 많다. 이것이 요즘 나의 숙제다.

삽 한 자루 둘러매고 산에 올라 집을 짓고 땅을 일구고 정원을 꾸미며 살고 싶은 마음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80, 90살이 되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살 수는 있을까. 아! 뭐 하며 살아야 재밌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삶엔 방학이 없으므로 나의 숙제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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