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북문지는 동쪽과 서쪽이 작은 산줄기를 바람막이 삼아 움푹 정상 쪽으로 들어간 구릉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명당이 좌우의 산줄기를 좌청룡우백호로 거느린 모습이었다. 전략적으로도 동쪽과 서쪽의 작은 산줄기를 엄폐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북문지 발굴조사로 나무를 베어낸 덕분에 서쪽 산 아래 시계가 탁 트인다. 가까이 지동동으로부터 멀리 옥산, 오창 과학산업단지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오송읍을 지나 전의 운주산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정상에서 남으로 직선거리 5km쯤에 팔봉산이 있고, 그 너머로 남이면 척산리의 봉무산이 있다. 봉무산에서 부강 쪽으로 독안산성, 복두산성, 성재산성이 있고, 복두산성에서 북으로 강내면의 저산성이 있고 단군성전을 모신 은적산이 여기서 코앞이다. 서쪽으로는 연기 운주산성과 서남쪽으로 연기 당산성이 원수봉산성으로 이어져 부강의 합강과 만난다. 부강의 산성들은 동으로 건너와 문의 구룡산성과 청주의 와우산토성, 상당산성으로 이어진다. 북으로는 오창의 목령산성과 초정의 구녀성과도 연결된다. 이렇게 보면 부모산성은 청주지역 산성의 한가운데가 된다. 청주의 서쪽 통로를 지키는 요새일 뿐 아니라 지역의 사령부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를 청주 탈환의 요충지였다고 하는가 보다.

여기에 시민이 운동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 놓았다. 멀리 옥산까지 탁 트인 미호천변의 기름진 들판을 바라보면서, 중부고속도로를 넘어 오창과학산업단지, 오송보건과학단지를 내려다보면서 운동 기구에 올라 앉아 심신을 단련하는 시민들이 참으로 한가로워 보였다. 이 사람들이 삼국 시대의 격전장이었던 이곳의 애환을 알기나 할 것인가? 또 몽고의 침입으로 이곳 주민들이 생사를 넘나들었던 정신적 고충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반대로 이 작은 성에 모여 옥죄어 오는 외적으로부터 어떻게 하든지 명줄을 부지해야만 했던 당시의 백성들도 오늘의 풍요와 한가로움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너진 석성은 시간의 축지법으로 역사의 벽을 넘어서서 과거의 고통과 오늘날 풍요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과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궁금하기만 했다.

북문지를 지나 동편으로 돌아 나오는 길옆에 사람들의 휴식터가 있다. 여기는 마치 전망대 같아서 청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이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돌아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구릉이 있고 거기에 연화사가 있었다.

산성이 있는 산줄기를 따라 몇 개의 작은 규모의 보루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 보루에 대하여는 아직 보고된 바가 없다. 부모산성이 축조되기 이전의 유적일 가능성도 있으며, 부모산성과 같은 시기에 축성된 보조 성일 가능성도 있어 앞으로 이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부모산성은 성벽의 기저부가 원상태로 남아 있으며, 중부이남 지역에서는 처음 조사된 계단식 보축 성벽 등 역사적으로 고찰할 자료가 많이 남아 있어 청주지역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알려졌다.

돌아내려오는 길이 약간 씁쓸했다. 답사 이전에는 그냥 작은 산성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유적이라는데 가슴 뿌듯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모산성은 청주의 들머리에 있으며 주변 산성들의 가운데에 있으니 청주의 지킴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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