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내 이 나이 되도록 강을 오르내리며 뱃전을 베개 삼아 살아왔지만, 너 같은 놈은 첨 본다.”

마침내 경강상인이 사내 녀석의 끈질김에 두 손을 들고 간절이 생선 한 무더기를 내주었다. 녀석은 뱃전에 서 있는 늙수그레한 경강상인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연신 허리를 굽히며 절을 했다.

“저 녀석을 본방으로 데리고 오너라.”

사내 녀석의 흥정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최풍원이 동몽회원들에게 일렀다. 동몽회 원에게 이끌려 봉화수가 북진본방으로 온 것은 백중장이 파할 저녁 무렵이었다.

“너 이눔! 본방 허가도 받지 않고 장사를 하면 어찌 되는지 아느냐?”

최풍원이 사내 녀석을 떠보기 위해 엄포를 놓았다.

“알고 있었지만, 북진본방 처사에도 문제가 있습니다요.”

녀석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북진본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래, 여기 본방에 문제가 뭐더냐?”

“장사는 왜 본방과 임방주들만 한단 말입니까? 쓰고 남는 것이 있으면 팔고 필요한 게 있으면 사는 게 장터 아닌가요? 그런 장터에는 아무나 와서 장사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네 말이 일변 맞기는 하다만, 아무나 장터에 나와 장사를 한다면 혼란해져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길 터이고, 그러다보면 다툼이 일어나 제대로 거래가 이뤄지지 않지 않겠느냐? 그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건 어르신 생각입니다. 물건이 모두 다 제각각이고 보는 눈이 다 제각각인데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혼란스러움 때문에 흥정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요? 혼란스럽다 해서 북진본방 장사꾼만 장사할 수 있게 한다면 흥정도 없이 여기서 정해준 금으로만 물건을 사야하니 외려 그게 사람들 원성을 살 일 아니겠습니까요?”

녀석은 단 한마디도 물러서는 법 없이 또박또박 답변을 했다.

“네 말인즉슨 누구라도 장터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해야 된다는 그 말이더냐?”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인데, 무슨 권리로 그걸 본방에서 막는답니까? 그리고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한테도 먹을 것 좀 나눠줘야지, 본방 혼자 다 독식하면 고을민들은 죽으라는 얘기인가요. 그렇다면 청풍도가나 북진본방이나 다를 게 뭐인지요?”

당돌하기는 했지만 녀석의 말에는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다. 최풍원도 어린 녀석이라고 얕봤다가 조목조목 조리 있게 따지고 드는 바람에 버적버적 진땀이 솟았다.

“허허-, 그놈 참! 그래, 이름이 뭔고?”

“봉화수라고 합니다.”

“나이는?”

“열 넷입니다.”

“집이 어딘고?”

“교리구먼요.”

교리는 북진에서 샛강을 건너 시오리쯤 올라가면 금수산 자락 동면에 있는 마을로, 향교가 있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인근에서는 ‘향교골’이라고도 불렀다. 한 해에 봄가을로 두 번씩 거행하는 향음주례가 있는 날이면 청풍은 물론 인근 금성·청풍·수산·덕산·한수 등 칠십여 리 안의 모든 유림들이 하얀 도포와 갓을 쓴 채 학 무리처럼 모여들었다.

“교리 어느 댁인고?”

“…….”

최풍원의 말에 똘방똘방 대답을 하던 녀석이 집을 묻는 물음에는 입을 닫았다.

“왜 대답이 없는고?”

“……권 씨 댁 새끼 머슴으로 있구먼요.”

머뭇거리던 녀석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그럼, 오늘 같은 날 주인한테 용채도 받았을 텐데 그것으로 맛난 것이나 사먹고 놀지, 뭣 때문에 어린 것이 생선 장사를 했는고? 남들은 백중날이라 모두들 즐겁게 노는 데?”

“그렇게 먹을 것 다 먹고 언제 머슴살이를 벗어나겠어요. 한 푼이라도 모아 늘려야지요.”

봉화수라는 녀석은 여느 일꾼이나 머슴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그래, 어떻게 돈을 늘릴 생각이지?”

“아직은 아니지만 돈이 모이는 대로 먼저 돼지새끼를 어머니한테 사드릴 거구먼요. 그래서 새끼를 빼서 늘리고, 그렇게 늘어나면 소 사고 송아지 나면 이웃들에게 어우리 줘서 늘리고 그렇게 목돈이 만들어지면 땅도 사고…….”

어린 녀석이었지만 봉화수의 꿈은 당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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