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만약 1만년이 넘는 내력을 지닌 순수한 전통 문화가 우리에게 있다면 어떨까요? 난리 나지 않을까요? 무형문화재 등록은 물론이고,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한다고, 온 나라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지 않을까요? 평범한 대한민국 백성인 저로서는 이런 생각인데, 실제로는 잠잠합니다. 잠잠하다 못해 숨 막힐 듯이 고요합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바로 활터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 활쏘기는 1만년이 넘는 내력을 지닌 세계 유일한 문화인데,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실로 형편없습니다.

우리가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는 문화재들이 있습니다. 경주 석굴암, 부석사 무량수전과 고구려 고분벽화 같은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의 전통문화재로 아는 많은 것들이 순수 혈통까지 갖추지는 않았습니다. 예컨대 경주 석굴암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교 문화재이고, 불교는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로 들어옵니다. 내력을 올려 잡아야 2천년이고, 그 내용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인도의 것이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외제입니다.(물론 외제라고 해 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반면 활쏘기는 어느 모로 보나 순수혈통인 우리의 전통문화입니다. 2000년 전에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의 활과 화살로 지금도 전국의 460여 활터에서 그때와 똑같은 동작으로 사람들이 활쏘기를 합니다. 이게 놀랍지 않다면 이상하지 않은가요? 이와 비슷한 것들이 있습니다. 윷놀이나 그네타기, 씨름 같은 민속놀이가 그렇습니다. 이들의 운명은 어떨까요? 씨름은 1970~1980년대 프로로 출범해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만, 지금은 많이 시들해졌습니다. 윷놀이나 그네타기의 경우에는 점차 사라져가는 중입니다. 씨름과 달리 윷놀이나 그네타기를 무형문화재도 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젊은이들은 인터넷 세상으로 떠나버려서 현실 속에서 구경하기는 매우 힘든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오래 동안 우리 겨레와 함께 한 활쏘기는 이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큰 변화를 입었고, 지금 굉장히 빨리 활터 문화를 갈아치우는 중입니다. <시인의 책꽂이> 연재를 마치고 조용히 살려는 저에게 충청매일로부터 다른 연재를 해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딱히 아는 것도 없고, 설령 아는 게 좀 있다고 해도 아는 체하기 싫어서, 싫다고 대답을 해놓고는 며칠 만에 그 대답을 거둬들였습니다. 활터의 숨 가쁜 변화가 앞으로 우리 활의 천년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저의 생각 한쪽을 슬그머니 당겨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어리석은 짓을 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활쏘기를 양궁처럼 단순히 스포츠로만 아는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활터는 오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거기서 양궁을 한다면 우리는 응당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활로 살을 쏘아 과녁 맞히는 기능만 남은> ‘양궁’이 어쩐지 활터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리의 무의식과 딱 맞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한복에 두루마기 입고 젊잖게 활을 쏘던 옛 그림과 양궁은 어딘가 안 어울립니다. 이 원인이 무엇인지를 한 꺼풀씩 벗겨보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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