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도중회에서 결정되는 사안은 회원들 상호간의 권익을 위해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다. 북진여각에서는 도중회 소속 객주들이 장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물품들을 공급해 주고, 산지에서 북진여각에 입고시키는 물산들을 대신 매매해 주는 역할을 했다. 북진여각은 그 대가로 도중회 객주들과 물산 매매에 관한 계약을 맺고 있었다. 최풍원은 북진여각의 최고책임자인 대행수로서 도중회 모든 회원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받고 있었다.

“시장해 죽겠구먼. 밥상은 언제 들어오는 거여!”

“북진여각에도 곡기 끊어지는 날이 있구먼.”

“방앗간 가서 쌀방아는 안 찧고 무슨 방아를 찧느라 이래 밥상이 더딘겨?”

새벽부터 길마를 지우고 짐을 싣느라 잔뜩 허기가 진 객방 사람들이 아침밥을 재촉하며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그때 북진여각에서 잔일을 하는 선머슴들이 두리반을 맞잡은 채 뽀얗게 김이 서린 부엌에서 열을 지어 빠져 나왔다. 정갈하지는 않았지만 상 위에는 투박한 산채들이 접시마다 수북했고, 두리반 가운데로 솥단지만한 양푼에 좁쌀 섞인 쌀밥이 모둠으로 푸짐하게 담겨져 있었다. 아침밥을 재촉하며 시장기를 참고 있던 객주와 보부상들이 두리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도 약빠르고 음식 탐하기로 소문이 난 서창객주 황칠규가 여느 때처럼 식탐을 부리며 제 사발에 밥과 반찬을 마구 퍼 담았다.

“네놈 아가리만 아가리냐? 아귀같은 놈!”

아침부터 시비를 걸던 금성 객주 함달주였다. 함 객주는 남의 생각은 하지 않고 제 입만 생각하는 황칠규가 못마땅해 불끈 쌍소리를 했다.

“밥 먹을 때는 개새끼도 안 건드린다는 데, 왜 지랄이여!”

황칠규가 지지 않고 발끈 성깔을 부리며 대거리를 했다.

“개새끼 같으면 네놈은 벌써 몰매 맞아 뒤졌을 거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짐승새끼라도 그렇게 얘기했으면 알아먹었겠다. 매번 아귀처럼 처먹어대기는.”

“니눔이 내가 구전이나 뜯어먹고 산다고 업신여기나 본데, 지금 당장 이놈의 짓 그만둬도 고향가면 늴리리 기와집과 땅 마지기가 있는 사람이여.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여.”

“좁쌀 서 되 천장에 달아놓고 삼년 흉년 기다린다더니, 네놈이 그 짝이구먼. 손바닥만한 서창 비알에 땅 마지기가 있어야 몇 푼어치나 되겠냐? 개뿔도 없는 놈이 흰소리는.”

함달주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황칠규의 비위를 건드렸다.

“니눔이 나한테 개뿔이 있는지 소뿔이 있는지 어떻게 알어!”

“그렇게 있는 놈이 밥상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환장을 하냐? 집에서 노다지 굶으니 매양 그 지랄이지.”

함달주의 입빠른 소리가 너무 지나친 것 같기는 했지만 모두들 잠자코 지켜만 볼뿐이었다. 오히려 황칠규가 당하는 꼴이 시원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심사는 좋아도 이웃집 불붙는 것보고 좋아한다’고 서로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언젠가 한번쯤 황칠규가 당하는 꼴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체면이고 뭐고 남이야 배가 고프든 말든 제 입구멍에만 음식을 퍼 넣는 황칠규의 행위 보따리가 그동안 여러 객주들에게 눈엣가시였었다.

“그게 네놈 독상이냐? 남들은 어떻게 먹으라고 질질 흘리면서 처먹고, 더럽게 간 묻은 숟가락으로 모듬밥에다 간 칠이냐? 네놈 같으면 더러워서 그 밥 먹겠냐?”

함달주가 하나하나 짚어가며 따지고 들자 황칠규는 붉으락푸르락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려, 잘났다 이놈아! 난 개같은 놈이라 개같이 산다. 니 놈은 뭐가 그렇게 잘났냐?”

“좁쌀에 뒤웅박 팔 일이여. 애당초 그만둬!”

심봉수가 싸우기도 귀찮다는 듯 황칠규를 외면하며 돌아앉았다.

“고추장 단지가 열 개라도 니 놈 비위는 못 맞추겠다. 뭔 성질도 저 지랄인지.”

애당초 승패를 가릴 싸움도 아니었고 이미 잘잘못은 분명해졌기에 더 이상 말싸움을 해봐야 돌아올 결과가 분명해지자 약빠른 서창객주 황칠규가 금성 객주 함달주의 까다로운 성질을 핑계 잡으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 시각까지도 최풍원과 봉화수는 북진여각 안채 사랑에서 어젯밤 황강객주 송만중의 탈퇴로 흐지부지된 도중회에 관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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