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잔 이눔에 장사도 다 틀렸어. 무신 다른 거둥을 내든지.”

먹을거리도 급급한 사람들을 상대로 난전을 틀어야한다니 답답하고 막막한 생각에 객주들이 한마디씩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한강 상류는 벌써 서너 해째 연거푸 홍수가 졌다. 해마다 여름 장마가 지니 겨울눈이 적게 내려 봄 가뭄이 심각했다. 사람들은 땅이 말라 씨앗이 돋지 않자 물지게로 강물을 퍼올렸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청풍이야 관아가 있는 고을의 중심지이니 아직은 괜찮았지만, 인근 물태리·북실·솔무정·양평리·황석골에는 내리 서너 해째 가뭄과 홍수가 짝을 맞춰 휩쓸자 빈집이 늘어만 갔다. 관아에서 빌려먹은 환곡을 갚을 길이 없자 아전들의 닦달을 견디지 못해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마을에는 젊은이들보다 늙은이들이 더 많았다. 늙은이들만 남은 마을에서는 죽고 싶어도 상여 멜 젊은이들이 없어 죽지 못하겠다고 아우성들이었다. 광의리객주 금만춘의 말처럼 쥐뿔도 없는 놈은 마누라 고쟁이라도 내놓아야 할 지경이었다. 고쟁이를 내놓는다는 것은 몸을 판다는 의미였다.

“이눔아! 고쟁이도 쓸 만한 고쟁이라야 팔아먹든 삶아먹든 하지, 다 떨어진 고쟁이는 거저 줘도 거들떠도 안 봐.”

매포객주 박노수가 칙칙하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은 쓸 만하다.”

“쓸 만해서 니눔은 좋겠다. 내는 여물만 축내는 늙은 말이여. 그런데다 갈수록 고집통은 왜 그렇게 세지는지 팔아먹을 수도 없고…….”

“니눔 나이가 얼만데 벌써 그렇게 됐냐?”

“말도 말 나름이지, 나이가 무슨 상관이여.”

“야, 이놈들아! 실없는 소리들 말고 어서 짐이나 챙겨!”

객주들 중에서는 나이가 훨씬 연장자인 영춘객주 심봉수가 듣기 싫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어르신은 부처님 뭐래유? 이런 얘기가 왜 싫대유?”

“참말이지, 낸 그런 맘 눈곱만치도 없다.”

“그런 어르신 말은 그짓뿌렁이유. 한 파수 장마당 한 번 거르는 일 없고, 한 번 쉴 참두 없이 젊은 우리보다도 더 약빠르게 걷는 데 그럴 리가 있슈? 저 어른 아직도 손발에 땀이 척척하게 샘솟듯 솟는다고. 그런데 생각이 없다면 그짓뿌렁이지. 안그라냐?”

박노수가 심 객주와 다른 객주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동의를 구했다.

“맞구먼. 저 어른이 내숭 떠는 거라고. 늙은 말이 콩을 더 잘 줘먹는다는 것 몰러? 우리가 앞에 있으니까 저러지 혼자 있어봐, 칠십 안노인이라도 고쟁이만 내리면 얼씨구나 달려들껄!”

젊은 객주들이 심 객주를 쳐다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숭악한 놈들!”

심 객주가 떼거리로 대들며 음풍을 하는 객주들을 외면한 채 길마를 진 나귀 엉덩이만 쓰다듬었다.

“객주님들! 어르신 그만 놀리시고 아침 드신 후 도중회를 열테니 객사에 기다리래유. 대행수어르신께서 당부 말씀이 있으시대유!”

사랑채와 행랑채를 오가며 잔심부름하는 삼석이가 소리쳤다.

아침 햇살이 옅게 퍼지자 강물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명주실 같은 햇살이 금수산 위로 떠오르자 첩첩이 쌓여 있던 강 안개가 고운 머리칼을 풀어헤친 듯 아물아물 공중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퍼런 강물이 드러나며 강 건너 청풍읍 관아 건물들도 한 채, 두 채 안개 속에서 피어올랐다.

“저리도 안개가 자욱한 걸 보니 오늘도 이마빡이 삐껴지도록 뜨겁겠구먼.”

붉은 햇살을 받아 불이 난 듯 솟아오르는 강안개를 내려다보며 객주들은 오늘 하루 뙤약볕을 받으며 걸을 일에 걱정부터 앞섰다. 평시 같으면 보부상들이나 장돌뱅이들은 대부분 어리산 아래 덕산장에 있었을 것이었다. 어제 청풍 읍내장을 본 후 밤길을 걸어 지금쯤 덕산에서 장마당을 펼치느라 분주할 터였다. 그런데 하루를 더 북진여각에 머물며 덕산장을 포기한 것은 도중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중회는 북진여각과 그 산하 여러 임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의논하는 기구였다. 도중회는 일종의 조합으로, 북진여각 내 상인들로 구성된 동업자 단체였다. 도중회를 구성한 가장 큰 목적은 각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도중회를 통해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장마당을 돌며 얻은 정보들을 회원들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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