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기 교수의 티베트 기행 ⑩

   
 
  ▲ 암드록쵸 호수 끝자락 삼딩사원 가는 길에서 바라본 해발 7천191m의 노진강상산. 이 산을 넘어야 갼체에 이른다.  
 

하늘이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비가 내린다. 아니 눈이 못 된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일행 모두는 도로 곳곳이 진흙탕으로 변해 계속 갈 수나 있을것인지 걱정이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도랑에 갑작이 물이 불어 서양인 서넛을 태우고 앞서가던 지프가 급류의 도랑을 건너자마자 엔진이 꺼지고 시동이 되지 않아 망연자실하는 모습이다. 도와줄 여력도 없지만 강하게 쏟아지는 빗발에 남은 일정이 불안해 그냥 침묵으로 살펴갔다.

얼마를 더 가니 이젠 빗줄기가 대추 알만큼 크기의 우박으로 변해 호수 수면의 빗살이 흰 비늘로 변하고 차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천지개벽이라도 할듯 요란하다. 좀 더 고지대로 오르니 우박은 아예 눈으로 변해 티베트의 하루는 신계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 한다.

저녁 늦게 20여호 되는 나가체라는 조그만한 마을에 도착한다. 화물차와 기사들이 하루 쉬고 가는 이른바 국가운영의 우정빈관이라는 초대소에서 여장을 풀었다. 엑스트라침대를 하나 더 들여 놓고 셋이 잠을 청해보지만 때에 찌든 침구에서 나는 냄새로 잠을 설쳤다. 잠자리에 예민한 장사장이 잠못이루며 삐걱대는 침대소리를 듣는사이 아침이 됐다.

몸은 잠을 제대로 못이뤄 무겁지만 엊저녁과 달리 청명한 날씨가 그나마 위안이 됐다.

초대소에서 30분가량의 거리에 있는 삼딩사원 가는길 바로 우측으로는 호수늪지대 건너로 오늘 넘어야 할 7천191m의 노진강상산 만년설이 아침 햇빛을 받아 더욱 순백을 뽐내고 있다.

그리 높지않은 산 정상의 밝은 사원에는 몇 안되는 승려들만 보일뿐 아주 평범해 이곳이 사원인가 의심이 들 정도다. 암드록쵸 호수 건너 히말라야산맥 연봉들을 촬영하러 사원의 제일 높은 건물을 찾아 들어서니 동승이 돈을 요구했다. 좀 나이 든 승려까지 합세해 20위안을 주고 통과했다.

삼딩사원에서 보는 암드록쵸 호수는 딴곳에서 보는 경치와는 또 달라 침식작용해 의해 갈라진곳, 늪지대, 농경지 등이 호수와 같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노진강상산 고개를 통과해 평지에 내려 서니 들판엔 온통 유채꽃밭이다. 다음 목적지 갼체(江孜)까지 가는 길 옆으로의 노란 유채꽃 물결은 유독 샛노랗게 보였다.

해발 3천800m의 갼체시는 온 도시가 도로공사로 인한 흙먼지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다.

옛날 티베트와 네팔, 부탄을 잇는 무역로의 관문이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낙후된 도시 같았다.

점심식사를 한 식당앞에 차를 두고 걸어서 14세기에 축조 됐다는 비 종교적 유적지인 요새 갼체종엘 찾아가니 입구앞 광장도 공사중이라 출입을 통제했다. 중국당국에 의해 라사의 포탈라궁 앞과 비슷하게 기념탑을 세우고 주변 조경작업이 한창인것이 목격됐다. 먼 발치서 한때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고 하는 갼체종을 일별하고는 서둘러 도시를 벗어났다.

오전과 달리 시가체(日喀則)로 가는 중간에 또 비를 만났다. 그나마 대부분의 구간이 포장이 돼 기분좋게 달릴수 있어 좋았다.

해발 3천900m의 시가체는 티베트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 라사와 같이 이 도시도 사원을 중심으로해 형성된 도시다. 라사에 조캉사원이 있듯이 이곳엔 타쉴훈포사원이 있다.

신도시지역의 규모도 꽤 크고 깨끗한 상동호텔에서 짐을 풀었다. 몇가지 세탁물을 호텔에 맡기고 빗속의 시내구경에 나선다. 그렇게 번잡하지도 않고 시원하게 뚫린 라사와는 또다른 느낌의 도시다.

9일 아침은 아직도 궂은비가 내리는 가운데 타쉴훈포사원으로 향했다. 넓적한 광장을 지나 사원으로 들어서니 좀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참배객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다양한 색의 건물과 구조물들, 그리고 깨끗하게 정돈된 사원내외를 둘러보니 이제까지의 여타 사원들과는 뭔가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사원은 아름답기도 하고 운영이 잘 되고 있어 찬사를 받는 반면, 티베트인들이 직접 선택한 환생자가 아닌 중국측이 옹위한 인물인 11대 판첸라마(판첸라마는 달라이라마와 같은 지도자로서 그 둘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권력을 양분해 왔다)가 거주하고 있어 정치적으로 꺼림직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일행은 시간을 정하고 각자 흩어져 사원을 둘러봤다. 금빛 찬란한 지붕의 웅장한 중앙건물, 탕카(탱화의 일종)를 거는 흰색 벽이 눈에 띄었다.

사원 마당 가장자리의 회랑을 따라 대소법당을 빠져 나왔다. 사원 옆과 뒤의 산 언덕엔 순례길로 황금색의 큰 마니콜들이 죽 이어져 설치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시가체를 출발, 라체로 가는 길은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뒤섞여 있으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중간에 사캬사원을 거쳐 1시간여를 달리다보니 옛날엔 우정공로상의 트럭정거장이었다는 라체마을이 나왔다. 특별하게 볼만한 것은 없고, 이곳에서 성지 카일라스산으로 가는 길과 팅그리를 경유 네팔로 넘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다.

시간을 벌기 위해 마을에선 쉬지 않고 팅그리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길가엔 가끔 풍찬노숙하는 순례자들도 보이고 유목민들도 심심찮게 만났다. 넓직한 계곡을 끼고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 라크웨이 캉그리산이 가까워 위압적이다.

숨이 찰 정도로 험한 고갯길을 오르니 해발 5천220m에 가쵸라산 고개마루가 나오고 그 앞으론 히말라야 설봉들이 누가 빗자루로 쓸어 놓은것마냥 잡티 하나없이 고만고만하게 구름을 이고 줄지어 서 있다.

차를 세워 시원한 바람에 몸도 씻고 한숨도 토해내며 주변 설봉을 촬영하고 쉐가르(Saegar)가 원 지명이며 뉴 팅그리(Tingri)라고도 불리는 정일(定日)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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