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송만중은 내가 잘 알지. 그렇게 쉽게 물러날 놈이면 왜 걱정을 하겠는가? 우선 당장 우리는 난장을 틀어야 하는 데 그놈이 쑤석거리면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그놈 모르게 영남 물산을 이리로 돌려야 하는 데…….”

최풍원은 자신이 결정했던 문제에 대해 후회를 했다.

어제는 너무 화가 나 송만중을 징치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장사꾼은 절대 자신의 패를 상대에게 읽혀서는 곤란했다. 최풍원은 송만중에게 패를 전부 드러내 보여준 셈이었다. 송만중을 힘으로 징치한 것이 그것이었다. 송만중 같은 질긴 놈은 설득을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극약 처방을 썼던 것은 송만중에게 대한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나날이 커지는 황강의 상권과 자신의 권위에 맞서는 송만중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속내를 보여준 셈이었다. 애초에 싸움이 되지도 않을 상대라면 힘으로 밀어붙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싸움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최풍원은 거대한 북진여각의 일부분에 불과한 황강객주 송만중을 인정한 꼴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와 후회를 해본들 이미 물 건너간 일이었다.

북진여각 행랑채 마당에서도 도중회가 끝나면 곧바로 떠나기 위해 객주들과 보부상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간밤에 두리기로 모여앉아 그렇게 술을 퍼부어 댔는데도 사랑채 객주들과 행랑채 보부상, 그리고 장돌뱅이들은 일찍부터 일어나 길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발로 벌어먹고 사는 이들에게 부지런함은 뼛골에 박혀있어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하루 일을 준비하는 것은 습성이었다.

햇살이 퍼지기 전이라 아직은 습습한 바람이 거슬린다는 듯 나귀와 소들이 킁킁거렸다. 길마를 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것들도 있었지만 객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로 나귀와 소 잔등에 길마를 지웠다.

“이눔들아, 니들은 주인 잘 만나 호강인 줄 알어. 다른 눔들은 온종일 땡볕에서 밭 갈고 논 삶어야 하는 데, 니눔들은 짐이나 지구 ‘휘휘’ 세상구경이나 하면 되는 데 뭐가 힘들다고 똥궁뎅이를 뒤로 빼고 지랄이냐!”

서창객주 황칠규가 콧바람을 씩씩 내뿜으며 버티는 소의 엉덩짝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쳤다.

“그래도 주인보단 줏대도 있고 낫네.”

금성객주 함달주가 평소 살살거리며 아첨을 잘하는 황칠규를 비아냥거리며 놀렸다.

금성객주 함달주는 본래 제천 사람으로 장돌뱅이 출신이었다. 그는 제천을 중심으로 강원도 산골지역의 향시를 주로 돌던 장꾼이었다. 그러다 매포객주 박노수가 다리를 놓아 북진여각 객주조합인 도중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성질이 칼칼해서 남한테 해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이놈아!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단 말두 모르냐? 이런 세상에 니눔처럼 뻣뻣하게 굴다가는 어느 목수 도끼에 잡혀가는 줄도 모르게 죽어. 소나기는 피해 가라고 어떻게 해서라도 사는 게 중한 거여.”

“사는 게 중하기는 하다만 네놈처럼 그렇게 똥창알머리까지 빼놓고 살라면 차라리 흙냄새 맡고 드러눕는 게 낫겠다.”

“뭐가 밸이 꼬여 식전부터 지랄이냐? 길 떠나는 사람 재수 없게 시리.”

“나이 값 좀 하고 줏대 세우라는 얘긴데 남에 배알 탓은 왜 하노오-.”

황 객주를 놀리느라 함 객주가 말꼬리를 길게 뺐다.

“사돈 남 말 하지 말고 니눔이나 나잇값 자알 하거라!”

“그래서 니놈은 소만도 못 하다는 겨. 아무리 좋은 소릴 해도 들어 처먹질 않으니 살살병이 고쳐지겠냐?”

“남에 살살병 걱정 말고 니눔 뻑대병이나 고쳐!”

“아, 형님들 그만들 두슈! 한 파수 뒤면 다시 볼 텐데 뭐가 서운들하다구 그러시우? 핫하하-.”

농을 치며 터지듯 쏟아놓는 장회객주 임구학의 버럭 웃음에 조용하던 아침마당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나저러나 성시가 이뤄져 이번 난장에 한 대목 잡아야할 텐데 겨우내 갈무리해둔 물산이 별반 없으니, 마누라 고쟁이라도 내놔야 할 형편이구먼.”

양평 객주 금만춘이 허기진 소리를 했다.

“먹고사는 게 포도청보담도 무섭구먼. 새끼들 입 벌리는 것만 봐도 겁이 난다닝께.”

“가솔들만 아니면 이놈에 세상 버리고 애시당초 강물로 뛰어들었을거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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