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객주들 도중회에서 난장을 결의하다

[충청매일]  금수산 능선을 따라 가느다란 빛이 눈썹처럼 떠올랐다. 마을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희뿌연하게 밝아오자 거북이가 떼를 지어 언덕을 오르고 있는 것처럼 강 언덕을 따라 납작 엎드려 있던 초가집들이 잠을 깨며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북이 등짝처럼 얼기설기 새끼줄로 엮은 초가집 지붕 사이로 드문드문 연기가 피어오르기는 했지만 아직은 이른 새벽이었다.

대행수 최풍원은 새벽 동이 터오기도 전부터 여각 누마루에서 텅 비어있는 북진나루터를 내려다보며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얕은 바람에 강물 위를 휩쓸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지나간 세월을 꿈결 같다고 말하지만 최 행수는 한 번도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최 행수에게 지난 세월은 돈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인고의 시간이었다. 최 행수는 한 번 쥐면 움켜쥔 손을 펼 줄 모르는 굳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내 것만 챙기려고 남의 어려움을 모른척하는 그런 자린고비는 아니었다. 외려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힘겨운 고을민들을 위해 여각의 창고를 아낌없이 열었던 장사꾼이 최풍원이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뼈아픈 기억들 때문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북진여각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북진여각은 이제 다시 한 번 큰걸음을 뛸 준비를 마쳤다. 그래서 북진장과 상전거리를 새로 만들고 북진나루를 확장하고 나루터에서 상전과 여각으로 마차가 다닐 수 있는 한길도 닦은 것이었다. 그리고 북진의 새로워진 면모를 인근 장꾼들은 물론 원근의 보부상과 객주들, 경강상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난장 틀 계획을 했다. 최풍원이 어려서부터 품고 있던 거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였다. 북진에서 거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청풍도가를 반드시 밟고 일어서야 했다. 그러려면 북진장을 청풍읍장보다 더 활발하게 키워야 했다. 그리고 북진장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첫걸음이었다. 그래서 난장을 틀려고 계획한 것이고,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 북진여각의 객주들 모임인 도중회의를 소집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밤 생각지도 못했던 황강객주 송만중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최풍원이 소집했던 객주들의 도중회의가 무산되고 말았다.

최풍원과 봉화수는 북진여각 사랑채 누마루에서 어젯밤 황강객주 송만중의 탈퇴로 흐지부지된 도중회에 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대행수님, 황강은 어떻게 할 요량이신지요?"

봉화수가 상념에 잠겨있는 최풍원에게 물었다.

“황강객주 자리는 우선 밀어둘 생각이네. 문제는 난장을 틀려면 이제껏 송만중이가 관할했던 영남 물산들을 누군가가 책임지고 우리 쪽으로 돌려야 하는 데…….”

최풍원은 북진에서 열려는 난장을 송만중이가 훼방을 놓을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송만중이가 어젯밤 죽을 지경의 치도곤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이제껏 자신이 관장해오던 영남 물산 상권을 순순히 내놓을 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북진여각에서도 송만중이 관장하고 있는 황강 상권과 영남에서 새재를 넘어오는 물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영남 물산 없이 북진에서 난장을 틀 수는 없었다.

“송 객주가 달려들까요?"

“송만중은 어떤 방법으로든 십중팔구 우리에게 달려들 거다!”

“그렇게 혼이 났는데도요?”

“그놈은 돈 되는  일이라면 잠자는 호랑이 수염도 뽑아올 놈이다.”

“그렇다면 동몽회 애들을 시켜 황강을 아예 쑥대밭을 만들면 어떨까요?"

“송만중, 그놈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이 아녀! 놈이 정신을 차리고 나면 분명 우리 뒤통수 칠 모사를 꾸밀 게 틀림없어!”

대행수 최풍원은 황강객주 송만중이가 반드시 대거리를 해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모사가 뭘까요?”

“그놈이 믿는 구석이 뭐겠는가? 경상도 물산과 목계장 아니겠는가?”

“그럼 둘 중에 하나를 끊으면 송 객주는 힘을 쓰지 못할 게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그걸 끊으려면 황강장이든 목계장이든 어느 곳에선가는 송만중과 부딪치지 않겠는가?”

“그럼 깨버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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