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시선: 불쾌한 시선을 견디는 방법

(2) 비너스, 최초의 포르노


고대 그리스 초기부터 여성상은 옷을 입은 채로 등장
남성의 건강한 육체미 보편적 인간 이상으로 보여줘
男 조각엔 근육 움직임, 女 조각엔 옷주름 묘사에 사활
프락시텔레스, 완전하게 나체 드러낸 비너스 조각
당시 가장 아름다웠던 매춘부 프리네를 모델로 삼아
19세기 화가 장 레옹-제롬 作 ‘법정에 선 프리네’에선
배심원들의 넋이 나간 듯한 입을 쩍 벌린 모습 눈길
그림 본 관객마저도 이 음험한 시선 공범으로 만들어

장 레옹-제롬, 법정에 선 프리네, 1861년(왼쪽).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비너스, 기원전 4세기
장 레옹-제롬, 법정에 선 프리네, 1861년(왼쪽).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비너스, 기원전 4세기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고대 비너스상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포르노이다, 라고 말한다면 신화 속 아름다움의 신 비너스가 포르노라니 이런 불경한 일이 있나 라고 독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비너스 신상이 누드로 만들어진 것을 탓한다면 고대 그리스에는 얼마나 수많은 누드가 있었던가. 오히려 그리스에서는 남성 누드가 훨씬 더 많았지 않은가. 그 유명한 ‘원반 던지는 사람’이나 ‘벨베데레의 아폴론’ 등이 역시 누드로 제작되었고 이 밖에도 누드 남성상이 허다한데, 콕 짚어 비너스상을 포르노의 원조라고 말하다니 그것은 후대의 무리한 억측이 아닌가라는 성난 질문이 들리는 듯하다.

맞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상보다 남성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론이나 제우스, 포세이돈과 같은 남성 신상들이 제작되었고, 운동 경기자들의 누드도 제작되었다. 운동경기자들은 실제로 나체로 행해졌던 남성들만의 운동 경기에서 우승한 평범한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의 조각상만큼은 신상과 유사하게 완벽한 신체로 구현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남성의 건강한 육체미를 보편적인 인간의 이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겼다. ‘남성’이 인간의 표준이고 조화로운 비례와 균형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신상이던 운동경기자상이던 간에 남성의 신체는 누드로 보여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반면 그리스 초기부터 여성상은 옷을 입은 상태로 등장했다. 그리스에서 조각을 만드는 기술이 완전히 무르익기 이전 시대를 아르카익(Archaic) 시기라고 부르는데, 이때 만들어진 수많은 소년상과 소녀상들을 보면 소년상들은 모두 나체로 등장하지만, 소녀상들은 모두 옷을 입고 있다. 남성의 신체가 가장 아름다운 인체의 전형을 제시한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매우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비너스상 역시 처음에는 옷을 입은 상태로 조각되었다.

따라서 인체를 조각하는 기술이 사실주의적으로 발전하면서 조각가들은 남성 조각에서는 근육의 움직임을, 여성 조각에서는 옷주름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비너스상도 처음에는 옷을 입은 채로 조각되었다. 하지만 조각가들은 점차 비너스가 완전한 성인 여성의 몸으로 물에서 태어났다는 탄생의 지점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옷을 입되 물에 젖은 상태의 비너스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물에서 나오는 비너스는 옷이 착 달라붙어 몸의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걸친 옷을 점점 얇고 섬세하게 만들어 누드와 다름없는 상태의 조각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완전하게 나체를 드러낸 누드로서의 비너스가 고대의 가장 유명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eles)에 의해 조각되었다. 그것이 바로 크니도스(Knidos)섬의 비너스이다.

프락시텔레스가 제작하고 크니도스 섬에 사들인 이 비너스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몸을 완전히 드러낸 미의 신 비너스는 막 바다에서 나온 듯 한 손에 옷을 들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음부를 가리고 있다. 남성 신들이나 경기자상들이 자신의 음부를 가리지 않은 것과 대별되는 지점이다. 이 다음 순간에는 손으로 음부를 가릴 것 없이 손에 쥔 옷을 걸쳐 입었을 것이지만 프락시텔레스는 옷을 입기 전의 순간에 주목했다.

프락시텔레스는 이 비너스상을 원래 코스(Kos)섬으로부터 의뢰받았으나, 여신이 누드로 만들어진 것에 경악한 코스섬의 의뢰자들은 이 조각을 거절했다. 프락시텔레스는 대신 옷을 입은 비너스상을 코스섬에 납품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옷을 벗은 비너스상은 크니도스섬에서 매입하여 신전에 세워지게 되었다. 누드의 비너스상을 받아들인 크니도스섬의 판단은 경제적으로 옳았다. 이 비너스상은 너무도 유명해져서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크니도스 시가 골머리를 앓아왔던 부채를 모두 탕감할 수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보통 신상은 신전에 안치되는데, 보통의 신전들이 장방형으로 만들어지고 그 가장 안쪽에 신상이 놓여지므로(오늘날의 성당처럼) 신상의 뒷모습은 노출이 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크니도스의 비너스는 기둥으로 둘러싼 원형 신전의 형태로, 가운데 신상이 들어가고 삼백육십도를 돌아가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당시에 이 신전에 갔던 사람들은 원형의 신전을 빙 돌면서 비너스의 전신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신전은 신의 능력에 기대어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장소이지만 크니도스섬의 비너스는 좀 달랐던 것 같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의하면, 비너스신의 아름다움에 취한 남성들이 신상에 다가가 끌어안았다거나 밤이 지나고 나면 이 신상 주변에는 정액 냄새가 진동했다니 말이다. 누드의 비너스신은 기원의 대상이기보다는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관음증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마치 오늘날의 포르노그라피처럼 말이다.

크니도스의 비너스는 구체적인 모델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락시텔레스는 당시에 가장 아름다웠던 것으로 이름이 높았던 프리네(Phryne)를 비너스의 모델로 삼았는데, 이 여성은 ‘헤아티라’라고 불리는 고급 매춘부였고, 프락시텔레스 자신의 애인이기도 했다. 헤타이라라는 매춘 직업군은 계급이 높은 이들이나 명망이 있는 이들을 상대하는 매춘부로, 문학적 음악적 재능이 있는 지적 여성들이었다고 전해진다. 프리네는 그 가운데서도 자신이 남성들을 고르는 입장이었고, 그녀에게 거절당한 남성들이 앙심을 품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프리네가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구형받아 법정에 서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프리네가 ‘헤타이라’를 직업으로 등록을 하지 않아서였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죄목은 논란이 분분하다. 아무튼 그 아름다운 창부 프리네가 법정에 섰다. 이 장면을 상상하여 19세기 화가 장 레옹-제롬(Jean Leom-Jerome)은 ‘법정에 선 프리네’를 그렸다. 불경죄, 신성모독죄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괘씸죄와 비슷한 것이어서 아무리 논리적으로 변론을 해도 분위기는 사형으로 모아지는 것 같았다.

이에 최후의 수단으로 그녀의 변호인이 배심원단 앞에서 그녀의 옷 앞섶을 찢어서 가슴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신이 빚은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이 어떻게 신성모독을 할 수 있는가, 신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신체를 가진 그녀를 벌하는 것이 오히려 신에 대한 불경죄가 아닌가, 하고 변호인은 마지막 변론을 했다. 그녀의 상반신 노출에 충격을 받은 배심원단은 그녀를 무죄방면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그린 제롬은 상반신만을 노출한 것으로 그리지 않고 전신을 다 보여주고 있다. 프리네는 수줍은 듯이 얼굴을 가리지만 몸의 굴곡을 잘 보여주는 자세로 배심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세는 어쩐지 기록에 전하는 프리네의 진짜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 프리네는 자수성가한 부자였고,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으로 무너진 테베의 성벽을 복구하는데 자신이 자금을 대겠다고 하면서 ‘알렉산더에 의해 무너지고, 매춘부 프리네에 의해 재건되다’라는 문구를 새겨 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이 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프리네의 대범하고 당당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그런 프리네가 옷이 벗겨져 너무도 수줍다는 듯이 눈을 그리고 자신의 몸을 한껏 아름답게 보여주는 포즈를 취하는 것은 어쩐지 그녀답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이 그림의 백미는 붉은 옷을 입은 배심원들의 얼굴이다. 수염을 기른 늙수구레한 남성 배심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들의 시선이다. 그림 속 프리네가 실제로는 불쾌했을 시선, 감탄마저도 진저리쳐지는 시선들 말이다. 제롬은 이 그림을 보는 관객마저도 이 음험한 시선의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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