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800년, 정(鄭)나라는 주(周)나라를 섬기는 제후국이다. 초대 제후는 환공이었고, 그 뒤를 무공이 이었고, 이어 장공(莊公)에 이르렀다. 장공은 신하 제중을 총애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제중이 그 보답으로 등(鄧)나라에서 미인을 데려와 장공에게 바쳤다. 장공이 이 여자에게서 태자 홀(忽)을 낳았다. 후에 장공이 옹씨(雍氏) 여자에게서 돌(突)을 낳았다. 옹씨는 이전에 송나라 왕의 총애를 받은 미인이었다. 장공이 죽자 태자 홀이 그 뒤를 이어 소공(昭公)에 올랐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송나라가 강하게 유감을 표시했다. 송나라는 정나라보다 땅도 넓고 군사력도 강했다. 몰래 특공대를 보내 정나라 제중을 사로잡아왔다.

“네놈이 살고 싶거든 당장에 공자 돌을 정나라의 제후로 세우도록 하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을 죽일 것이다.”

제중이 어쩔 수 없이 송나라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했다. 소공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위(衛)나라로 달아났다. 이에 제중이 신하들과 함께 공자 돌을 제후로 옹립하였다. 이가 곧 여공(?公)이다.

여공은 비록 제후의 자리에 올랐으나 신하 제중의 권력이 갈수록 커지자 불만이 많았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평소 총애하는 신하 옹규(雍糾)를 은밀히 불러 말했다. 옹규는 제중의 사위였으나 누구보다 여공을 따랐다.

“제중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내가 믿을 것이라고는 옹규 그대뿐이다. 그러니 그대가 알아서 처치하도록 하라!”

옹규는 밀명을 받고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술을 먹고 유희를 즐기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밀명을 털어놓고 말았다. 다음날 옹규의 아내가 서둘러 자신의 친정을 찾아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와 남편 중에 어느 쪽이 제게 더 가깝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네게 아버지는 세상에 단 한 분뿐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남자는 너의 남편이 될 수 있다.”

옹규의 아내가 그 말을 듣고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이 들은 밀명을 다 고자질했다. 제중이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사람을 시켜 옹규를 잡아오도록 했다. 옹규는 어느 거리를 지나다가 붙잡혀왔는데, 제중의 마당에서 단칼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 시신을 저자거리에 두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도록 하였다.

한편 여공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중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도리어 죽은 옹규을 원망하여 말했다.

“네놈은 여자에게 함부로 입을 놀렸으니 죽어도 마땅하다!”

결국 여공을 변방 지역인 역(?)으로 쫓겨났다. 이저 제중은 다시 소공 홀을 맞아들여 제후에 앉혔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세가’에 있는 고사이다.

과정지훈(過庭之訓)이란 공자가 마당을 지나칠 때 자식에게 몇 마디 가르쳤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친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자식을 낳고 키운 것은 어머니지만, 자식을 사람 되게 한 것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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