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삼복 절기다. 우리 사는 세상은 태양열에 시멘트가 달궈져 도시들이 펄펄 끓고 집중호우의 물폭탄에 더해 지진 소식까지 뒤숭숭, 덥다. 덥고 뒤숭숭하니 식욕부진에 의욕부진에 체력부진까지 부진 삼부작을 만나면 몸과 마음의 면역고갈은 뻔한 응보가 될 위험이 있다. 어떤 시원한 이야기를 만나 더위를 견뎌내면 좋을까. 시원한 계곡 어디쯤 찬 물에 탁족을 할 수 있으면 좋고, 먼 나라 귀족들이 했다던대로 혹서와 혹한을 피해 떠나는 일도 좋을 것이다. 냉방기에 쓰는 전기요금도 부담스러운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난망한 일이고 보면 가까이 있는 시원한 것들이 절실하기도 하다. 건널목의 그늘막, 길 가의 나무그늘, 시원한 과일 한조각, 물 한모금 은 더위를 잠시 쉬게 한다.

복닥거리는 현실에 동심의 알록달록한 시간을 불러다 놓으면 어떨까. 이래저래 복잡하고 심란할 때는 생각의 배경을 단순하게 하는 것이 염천을 넘는 지혜가 될지 모른다. 더운 나날들 한가운데로 상상의 세계를 데려다가 놓아보자는 것이다. 줄무늬를 하고있는 둥근 몸통 어디쯤을 두드려 발갛게 익은 통통 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이미 얼마쯤 해갈을 하고 먹기를 시작하는 수박한덩이 같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안녕달의 그림책 ‘수박 수영장’은 여름의 책이 된 지 이미 오래됐다. 시골 마을,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수박은 준비되었다는 듯 쩍 갈라진다. 수박 수영장 개장이다. 수박이 반으로 쫙 갈리면 논에서 일하던 아저씨, 고무줄놀이 하던 아이들, 몸이 불편한 사람, 빨래하던 아낙들이 신나게 달려간다. 모두가 수박 수영장에서 놀기 위해서이다. 수박은 수영장도 되고 모래사장도 되고 눈싸움장도 된다.

수박 수영장의 물은 락스 냄새 없이 달콤하며 찰랑찰랑이 아니고 서걱서걱 소리가 난다. 수영장에서 내려올 때는 수박껍질로 만든 미끄럼틀을 타면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지만 즐거움도 멈춰야 할 때가 온다. 그 때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쉽기 마련이지만 내년을 생각하다보면 아쉬움은 기대로 연결될 것이다. 내년에 더 큰 수박이 열린다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으려니 기대할 수 있다면 여름의 추억이 추운 겨울을 이겨 낼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그림책은 표지부터 편안하고 시원하다. 화면에 여백이 많고 수박 속에 아저씨가 무심한 듯 들어 앉아있다. 색연필로 수박의 질감을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그렸고, 선명한 수박 속과 겉의 초록이 대비되는데 색감이 고와서 평온스럽다. 수박이라는 사물을 수영장으로 바꿔 달콤한 상상의 세계를 만든 작가의 기발함은 더위를 놀이로 넘어서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더위를 식히려는 누군가가 수박씨를 하나 빼내고 들어가면 그곳이 개인의 수영장이 된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동네 사람들이 씨를 빼내고 모여들면 물이 넘실대는 수영장 안에서 모두는 만족스럽게 물놀이를 한다.

수박 덩어리로 눈싸움을 하면 그대로 얼음땡이 되고, 수박 속에서 근심없이 첨벙거리니 여름이 즐거운 계절이 될 수밖에 없다. 수박을 먹는 일과 수영장을 연결짓는 상상력 속에서 여름은 수박 수영장이 개장해서 잔치 열리는 계절이 된다.

책임져야할 일상 밀쳐두고 떠나는 것만 능사가 아니고 보면 시원한 수박을 만만한 크기로 수북히 만들어다 놓고 먹으며 입 가로 줄줄 흐르는 단물을 연신 한 손으로 받쳐가기도 하면서 함께 앉은 이들과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보면 어떨까. 수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상상이 어디까지인지, 수영장에 함께 간다면 책에 나온 방법 말고 어떻게 놀 수 있을지, 경제적이고 인문학적인 피서 방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주고받으며 한결 화목해지는 잠시나마 세상 시름 잊기를 작가는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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