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해외출장 중의 일이다.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안내를 받으며 이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직통 이동수단이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행이 요즘은 스마트폰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이번 출장에서는 그 마저 소용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스마트폰에서 5분 전까지만 해도 안내가 되었던 열차 정보가 사라지고 공사 중이라는 알림이 나타났다. 방문하기로 한 기관에 늦지 않으려면 다른 수단을 찾아야 했기에 동료들과 다시 역사로 가려는데 한 현지(오스트리아) 할머니께서 일행을 따라 오더니 대뜸 말을 걸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중간 환승역)으로 가는 기차가 곧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 발길을 돌려 다시 플랫폼으로 갔더니 정말 기차가 도착했다. 그런데 중간 환승역까지 가는 도중에 기차가 섰고, 아무런 안내도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 할머니의 도움으로 기차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철로가 공사 중이라 중간에 버스로 이동시켜주고 있었는데, 별도의 안내방송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중간 환승역으로 이동하는데, 하필 그날이 지역에서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날이었다. 많은 자가용으로 인해 버스가 움직이질 않자, 그 할머니는 다시 우리 일행에게 걸어서 20분 정도니 내리라고 하고는 앞장서 갔다. 반신반의하면서 쭈뼛쭈뼛하는 우리에게 서두르라고 재촉까지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환승역까지 가는 길은 축제인파들로 북적였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간신히 환승역까지 도착했지만, 안타깝게 간발의 차이로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그 할머니는 본인이 더 서둘렀어야 했다며 자책하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간단한 인사만을 나누고 헤어졌다. 회의 약속만 아니었으면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었다. 우리 일행은 역 앞에 있는 택시를 타고 30분이 늦었지만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외출장을 가면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앞선 할머니처럼 돌발 상황에서 우리의 목적이 달성될 때 까지 자신의 수고와 시간을 내어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일행은 너무 감사하고 몸 둘 바를 몰랐고, 돌아오는 길에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회의를 마친 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따라 돌아오는데, 오전과 마찬가지로 버스에서 기차로 갈아타야 했다. 버스에는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기차로 갈아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문득 오전의 할머니가 생각나서 짐을 계단 위까지 들어줬더니 아주 환하게 웃으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그 인사를 받는 순간 오전의 할머니에게 가졌던 미안함과 아쉬움으로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필자는 누군가에게 선물, 감사, 친절 등을 받을 때 선뜻 잘 받지를 못한다. 고마움의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에 대한 부담감이 있기도 하다. 사실 선물, 감사, 친절은 어떤 보답을 바라고 베푸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받는 입장에서는 선뜻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이기도 하다. 몇 해 전 어떤 목사님의 “사랑, 감사, 은혜는 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잘 흘려보내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준 사람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받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면 된다고 생각하니 받는 것이 훨씬 덜 부담으로 느껴진다. 반드시 준 사람에게 갚아야 할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낼 경우 더 큰 행복이 되는 것들도 많은 것 같다. 오늘도 잘 받고, 잘 흘려보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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