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화봉처럼 나지막한 산에 성이 왜 필요했을까? 남쪽은 노고산성으로 꽉 막혀 있다. 노고산성이 본대라고 하면 첨병이나 정찰대가 나와 있는 부속성이라고 볼 수 있다. 성의 규모로 보아 이곳 화봉산성이 모성(母城)이고 오히려 노고산성이 자성(子城)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각기 두 편의 군사 진지를 상상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여러 가지 전투 형태나 경우에 따른 성곽과 보루의 쓰임새를 상상해 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는 부강 나루에서 회인으로 향하는 적을 감시하다가 초전에 박살내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상상할 수도 있다. 나지막한 이곳이 금강으로 들어오는 배를 감시한다든지 서해에서 금강을 따라 올라와 부강나루에서 상륙하는 수군을 초토화시키는 요새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부강에서 남쪽으로 노고산성, 애기바위성, 화봉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성 줄기와 북쪽으로 성재산성, 복두산성, 독안산성, 유모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성 줄기는 가운데에 부강에서 청주로 향하는 도로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두 산성줄기를 마주보며 전투를 벌였을 수도 있고, 협공으로 산 아래 도로를 공격하였을 수도 있다.

화봉산성을 내려오면서 지금까지 답사한 산성을 돌아보았다. 세종시의 북쪽인 전의면 운주산성에서 시작한 산성답사는 백제 부흥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밟았다. 운주산성에서 금이성과 비암사를 지나 공주지역의 산성 가운데 백제 멸망과 부흥백제에 관계되는 산성을 답사하면서 백제 역사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부여의 사비성, 예산의 임존성과 대련사, 홍성의 장곡산성, 학성산성 등의 부흥백제의 주요 근거지를 살피면서 백제 유민들의 부흥운동에 대한 열정에 놀랐다.

특히 청양의 두릉윤성에서 백제 부흥에 열망이 무너지는 모습에 가슴 아팠다.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가림성에서는 백제 성곽이 고스란히 남은 모습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당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백제를 멸망시키지 못해 안달을 했는지에 대하여 궁금증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궁금증은 부여의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한 부여나성을 돌아보며 약간의 궁금증이 풀리기도 하였다. 당은 ‘화이불치 검이불루(華而不侈 儉而不陋)’로 요악할 수 있는 백제 문화의 깊이가 두려웠을 것이다. 다시 서천의 건지산성 전라도 부안의 우금산성에서 부흥운동에 관계된 산성 답사의 종지부를 찍었다.

신라와 백제가 삼한일통을 경쟁하던 옥천에서부터 청주까지 국경지대의 산성들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 산성의 특징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산성 부근에 백제 말기에 많은 사찰이 생겼는데 대부분 정토신앙의 보금자리가 된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사실이며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인간 준중 사고를 시사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나의 산성 답사는 청주 근방으로 발길을 돌린다. 청주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경쟁한 현장이므로 이 일도 매우 뜻 깊은 일이라 자부한다.

돌아오는 길은 등곡리로 내려가는 수렛길을 택할까 하다가 애기바위성을 다시 돌아보고 싶어 되짚어 왔다. 내려갈 때는 힘들었던 비탈길이 오히려 올라가는 길이 더 쉽다. 네 시간 땀 흘린 걸음으로 얻은 소득이 자못 크다. 약수터에 내려와 물 한 병을 사서 마시니 온몸을 다 씻어 내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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