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위대한 여성화가가 되기를 거부한 ‘조지아 오키프’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열 가지 미술 키워드]위대한 여성화가가 되기를 거부한 ‘조지아 오키프’
  • 충청매일
  • 승인 2019.07.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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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의문: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
(6) 나는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오키프의 ‘꽃그림’, 여성의 성적 감수성의 산물로만 평가 받아
평론가들의 선정적 수사 따라 다녀…의도와 다른 해석 거부감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조지아 오키프 초상, 1918(왼쪽), 조지아 오키프, 검은 아이리스, 1926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조지아 오키프 초상, 1918(왼쪽), 조지아 오키프, 검은 아이리스, 1926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나를 ‘최고의 여성화가’라고들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화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품에 부가되는 ‘여성적’이라는 해석에 질색을 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오키프의 작품이 여성성을 표현한다고 해석되었던 첫 번째 이유는 ‘꽃그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꽃그림은 과거에도 종교나 역사를 다룬 장대한 그림들에 비해 평가를 덜 받는 장르였고, 따라서 18세기 이후에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여성들이나 즐겨 다루는 분야로 여겨졌다.

또한 ‘꽃’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여성적인 것으로 젠더화되어 있는 사물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젠더감수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중이지만, 남성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꽃으로 비유(라기보다는 비하)하는 등의 일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키프는 꽃의 아름다움을 여성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주변에 꽃들이 많지만 실제로 꽃을 ‘정말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며, 친구를 만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꽃을 진정으로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을 통해 아주 바쁜 뉴요커까지도 꽃을 보는데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 꽃그림을 그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꽃그림은 단순히 꽃을 크고 아름답게 그린 것을 떠나 당대의 주된 미술담론, 즉 추상성과 평면성의 지점에서 평가될만한 작품들이다. 꽃잎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전체 화면의 추상성이 조화되는 방식은 분명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미술가들이 고민하던 바를 주의깊게 고민하고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키프의 꽃그림은 그저 ‘여성적’인 것, ‘여성의 성적 감수성’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이에 더하여 평론가들의 선정적인 수사가 계속 따라 붙어 다녔다. ‘여성은 자궁을 통해 느낀다’라든지, ‘연인들이 나누는 친밀함과 순수함과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라든지, 그녀의 작업이 ‘그녀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등가물’이며, ‘떨리는 입술’같고, ‘혀끝으로 핥은 듯이 격렬하고 서정적’이라는 등의 표현들이 오키프의 작품에 덧붙여졌다.

그의 작품은 흔히 여성의 성기를 꽃으로 비유한 것으로 이해되었고, 여성화가에 의해 그려진 여성 성기 형상으로서의 꽃은 여성의 성적 감흥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오키프는 알레르기반응을 보였다. 꽃을 그리는 다른 남성 화가들의 작품이 같은 평가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분개했고, 획일화된 해석에 갑갑함을 표현했다. 꽃이 여성적인 것일까? 꽃 그 자체를 생각한다면 암술과 수술을 한 몸에 가진 자웅동체의 형태가 아닌가?

오키프는 늘 단순하게 재단된 흑백의상을 입었으며, 남성적인 중절모를 쓰고 다니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스스로에 대해서는 오히려 중성적인 취향을 보였다. 뉴욕의 중심부에서 미국의 가장 유명한 화가 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나중에는 뉴멕시코의 사막에 집을 짓고 수도승처럼 작품을 하며 비타협적인 말년을 보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99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개최되었을 뿐 아니라, 뉴멕시코에는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화가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성적 수식어가 붙어다녔던 이유는 오키프 생애의 초반에 만나 사랑하고 결혼까지 했던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그녀를 바라보았던 관점과 관계가 깊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단순히 한 사람의 사진가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 현대미술의 주류 담론을 이끄는 인물이었으며, 화랑 주인이자 비평가이기도 했고, 잡지의 발행인이기도 했다. 스티글리츠 주변에는 미국 미술의 중심을 이루는 여러 화가들이 모여 있었으며, 그 중에서 오키프는 유일한 여성 화가였다. 오키프와 스티글리츠의 관계는 그저 화랑주인과 화가라는 단순한 관계로 끝나지 않았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그림을 보자마자 “제대로 된 여성화가가 나타났다”고 기뻐했으며, 두 사람은 23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한 스티글리츠가 유부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사랑에 빠졌다. 물론 오키프가 화가로서 미국화단에 인정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도 바로 스티글리츠였다.

오키프는 미술대학 졸업 후 미술교사로 생업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문득,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원하는 곳에 살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으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말하고 싶다고 모두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계기로 당시 가장 영향력 있었던 뉴욕의 스티글리츠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냈으며, 그 그림들이 스티글리츠의 화랑에서 전시되면서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그림 뿐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오키프에게 깊이 매혹되었고, 이른 동거와 전처와의 이혼, 그리고 본격적인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녀를 모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스티글리츠가 찍은 오키프의 사진은 전형적인 누드도 있었지만, 신체의 각 부분을 특정해 찍은 것들이 많았다. 가슴과 어깨, 목, 특히 그녀의 길고 우아한 손에 스티글리츠의 시선에 집중됐다. 막 잠이 깬 듯한 오키프가 나른한 시선으로 옷을 추스르지 않고 바라보는 사진이나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잡고 있는 사진 등이 스티글리츠의 작품으로 발표되면서 오키프는 본의 아니게 여성으로서의 내밀한 모습들을 공개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랑에 빠진 여성으로서의 오키프의 신체는 섬세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성적으로 유혹하는 듯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오키프는 그 자신이 독자적인 화가로 우뚝 서기 이전에 스티글리츠의 뮤즈로서, 자신의 신체 부분을 낱낱이 그의 사진기 앞에 공개한 ‘여성’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 사진 속에 조지아 오키프라는 화가로서의 정체성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한 남성에게 완전히 몸을 공개한 모델로서의 그녀는 주체적인 모습이기보다는 ‘여성성’의 화신처럼 비쳐졌다. 사생활로부터 비롯된 사진 속의 오키프의 모습은 스티글리츠의 명성과 더불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독립적인 화가로서의 오키프의 그림 역시 사진 속 누드의 여성이 그린 그림이라는 연상을 불러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오키프의 이후 행보에 족쇄가 되었다고 해서 스티글리츠의 사진 작품들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은 보는 자, 여성은 보여지는 자라는 뿌리 깊은 시각예술의 전통 속에서 오키프의 작품이 과연 정당한 평가를 받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오키프의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내밀한 에로티시즘을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충증적인 꽃잎들의 검은 안쪽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의 그림들을 여성적 감수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여성적 감수성의 산물로만 평가했을 때, 모더니즘이 그렇다고 도달하고 싶었던 화면의 평면성과 추상성에 관련된 주류의 비평 언어를 얻지 못하고, 여성화가 중 훌륭한 화가 정도로 폄하되었을 가능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오키프는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위대한 여성 화가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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