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김상만의 머릿속에서는 나루터 공사를 하는 동안 날씨가 잘해주기만을 간절하게 바랬다. 만일 공사를 하던 중이거나 미처 마무리를 짓지 못한 상태에서 폭우라도 쏟아지는 날에는 도루아미타불이었다. 세상에서 사람 손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해놓은 것을 한순간 쓸어버리는 것도 날씨였다. 그렇게 쓸어버리고 나면 더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꿈적거려야 살 수 있는 뭇 사람들이었다. 쥐뿔도 없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손을 놀리지 않으면 당장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날씨하기에 따라 목숨 줄이 달려있었다.

병풍산에서 북진을 보니 마을 뒤로 금방이라도 쓸려버릴 듯 누더기 보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뙈기밭들이 벌건 속살을 드러내보였다. 강나루와 접한 마을 앞쪽에 있는 약간의 다락논을 제외하면 북진은 온통 붉은 황토밭뿐이다. 붉은 밭마다 군데군데 마을사람들이 코가 땅에 닿을 듯 구부리고 무슨 일을 하고 있다. 집들이 게딱지처럼 붙어있는 마을에서 북진 나드리로 나가는 길목 중심에 있는 북진장터에도 사람들이 개미처럼 달라붙어있었다. 상전을 짓고 있는 북진장터거리였다. 그 뒤로는 아스라하게 방우리 마을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뭘 캐내고 심는거요?”

병풍산에서 밭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소로를 따라내려 오던 김상만이 일하고 있는 촌부에게 소리쳤다.

“지난 갈에 심었던 마늘이유.”

“마늘 농사 지어 재미는 좀 보았소이까?

“예년보단 훨썩 좋았소이다!”

“다른 해는 어땠는데 그러시오?”

“올해 대면 절반 값도 받지 못했지유. 그것도 청풍장까지 지고 나가 팔아도 그랬지유. 그런데 올해는 앉은자리에서 팔면서도 배도 넘게 받았으니 그 덕에 궁기는 면하고 이래 견디는 것 아니오이까?”

“이제 저 아래 상전이 지어지고 장마당이 열리면 훨씬 더 좋아질 것이오!”

김상만이 공사가 한창인 장터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거기 여각이 들어서며 우리 북진 사람들이 많은 덕을 보고 있지유. 모두들 고마워들 하지유!”

촌로는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 요새는 뭘 심고 있소?”

김상만이 화제를 돌렸다.

“저 밑 다락에 심은 것은 땅콩이고, 이건 콩이라오!”

촌부가 손가락으로 아랫다락과 윗다락에 심은 포기를 번갈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런데 요새 날이 가물어 걱정입니다.”

“그러게 말이유. 봄 가뭄이 심해 뿌리나 잘 내릴라나 걱정이라요. 저거 아침나절에 심군 게 발써 배배 돌아갑니다!”

촌부가 추욱 늘어진 콩 잎사귀를 손으로 쓸어 올리며 말했다.

“저 앞에 물이 저래 많은데…….”

김상만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촌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못 먹여 빼빼 말라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심정이나, 가물어 비들비들 타들어가는 작물을 보는 농군 심정이 다 같은 마음이었다.

“저래 물이 많어두 소용 없슈! 어깨가 빠지도록 한 장군 져다 뿌려두 돌아서면 버쩍버쩍이유. 농사꾼 살릴라면 비가 좀 내려야지, 이래저래 지게질로는 등골만 빼지 가물을 넘길 수 없다우!”

“비가 와야 할텐데…….”

김상만이 이중 말을 했다.

두 사람이 병풍산에서 내려와 물개와 동몽회원들을 불러 모았다.

“나루 어귀 물속 사정은 어떻더냐?”

김상만이 물개에게 물었다.

“객주님, 물속에 들어가 구석구석 살펴보니 그렇게 두둑하지는 않았습니다요. 또 모래톱 깊이도 어른 두 길이 될까 말까 합니다요! 또 배가 얹힐 정도로 솟은 모래톱 길이도 일백 자 남짓 합니다. 나머지는 강물 깊숙이에 있어 파내지 않아도 대선이 드나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요.”

물개가 북진나루 어귀를 막고 있는 물속 사정을 자세하게 알렸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이냐?”

“물속 모래를 어떻게 물 밖으로 퍼내는가 하는 겁니다요!

“네가 있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

“예?”

물개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 눈이 동그래졌다.

“니 눔이 그랬잖느냐. 너는 뭍보다 물속이 더 편하다고. 그러니 니가 들어가 다 퍼내면 될 일 아니겠느냐?”

김상만이 짐짓 딴전을 피우며 무대포로 물개에게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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