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강수야, 저기를 보거라!”

김상만이 손가락으로 북진을 가리켰다.

“객주님, 마을은 왜 보라 하십니까?”

강수가 김상만의 의도를 알지 못해 물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북진이 들어앉은 터는 참으로 요지다. 그런데도 관아와 오랜 청풍장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구나.”

김상만이 금수산과 대덕산 사이에 둥지처럼 들어앉은 북진마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병풍산 꼭대기에서 북진을 살펴보면 청풍읍성이 북진의 변두리처럼 보인다. 청풍읍성과 북진 사이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어 서로 마주보며 크게 양분된 것처럼 보이지만 청풍 쪽보다는 북진 가까운 쪽으로 훨씬 많은 마을들이 분포되어 있다. 그 마을사람들이 청풍읍성으로 일을 보러가려면 북진을 거치지 않고는 갈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청풍에 가려 빛조차 보지 못하는 북진에는 장은 고사하고 변변한 가가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북진에서 강만 건너면 바로 청풍의 읍내장과 연결되고 북진 쪽으로는 안암장과 성내장이 지척에 있었지만 북진은 그들 장을 연결하는 길목 역할만 하고 있었다. 그게 북진의 현실이었다. 북진이 지니고 있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청풍도가를 누르고 이 지역의 중심이 되려면 청풍읍장으로 모여드는 장사꾼들과 장꾼들의 발걸음을 북진에 잡아두어야 했다. 그러기위해서 꼭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북진나루를 개선하는 일이었다.

“객주님, 이런 말씀을 올려도 될런지요?”

강수가 김상만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지 얘기해 보거라!”

“이 아래 청초호로 흘러들어오는 본강 물줄기를 막고 나루터 입구를 막고 있는 모래톱을 파내면 어떨까요?”

“나도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도 용케 그걸 보았구나!”

강수의 말에 김상만도 찬동했다.

두 사람이 서있는 금병산 아래 발밑으로는 청초호라는 호수가 있었다. 북진나루의 위쪽이었다. 북진나루는 본류로부터도 물이 들어왔지만 위쪽에 있는 청초호로부터도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본류의 강물이 줄어들어도 물을 담고 있는 청초호로부터 물을 받아 가뭄이 심해도 북진나루의 수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오랜 옛날에는 북진나루 앞으로 강의 본류가 흘렀을 것이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강은 변하지 않고 항상 제자리를 지키며 흐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세상만물이 세월에 따라 변해가듯 강도 그러했다. 지금 청풍읍성을 끼고 흐르고 있는 남한강 본류의 큰 강물이 예전에는 청초호를 거쳐 북진나루로 해서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며 강의 본류가 서진하며 북진 쪽에 서서히 모래톱이 쌓이고 물길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종당에는 본류와 단절되며 지금의 청초호가 생겼을 것이었다. 그 모래톱이 길게 늘어지며 북진나루로 들어오는 입구를 막고 있었다. 강수의 말은 북진나루와 청초호가 연결되어있으니 청초호로 흘러들어오는 본강의 물줄기를 끊어버리면 수량이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나루의 물도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수량이 줄어들면 나루터 어귀를 언덕처럼 막으며 쌓여있는 물속 모래톱이 드러날 것이고 그때 이것을 파냐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김상만 객주도 그같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객주님, 청초호 들머리를 막는 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샛강이라 해도 보처럼 쌓아 물이 호수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할 텐데요.”

큰물줄기는 끊어졌다하지만 청초호 들머리에는 본강에서 흘러들어오는 샛강이 있었다. 마을 도랑에 짝을 뚝을 하나 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샛강이라 해도 강은 강이었다. 그런 샛강에 뚝을 쌓아 물길을 막는 일이었다. 그런 샛강을 막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한 일이었다. 강수는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물론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갈수기라 강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장마가 오기 전까지는 강물이 계속 줄어들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되면 청초호와 본강을 잇는 샛강은 바닥을 드러내거나 흐른다 해도 큰 힘을 쏟지 않고 보를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때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

김상만은 갈수기만 잘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김상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날씨가 사람들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은 날씨가 잘해주기를 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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